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

[펌] 우일신 : 전부를 보여 주지 않는 숨김의 아름다움-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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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를 보여 주지 않는 숨김의 아름다움- 부석사
현장 마당 / 역사 흔적 바로 보기
◎ 신라가 부석사를 세운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 부석사를 둘러보고 그 아름다움을 느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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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치는 고마움
우리나라 미술사의 선구자(어떤 일이나 사상에서 다른 사람보다 앞선 사람)였던 최순우 선생님은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사무치는(깊이 스며들거나 멀리까지 미치는) 고마움’이라고 표현했어요.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학고재) 중에서

눈을 감고 부석사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초겨울 고즈넉한 산사에 서서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건물들을 천천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건물들의 그 호젓한 아름다움은 그것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남긴 조상에 대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어집니다.
부석사는 676년 의상 대사가 신라 문무왕의 지시를 받고 경상북도 영주에 세운 절입니다. 예전에는 서울을 비롯한 중부 지방에서 부석사를 하루 만에 다녀오기에는 벅찼습니다. 대개 영주 시내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부석사를 찾곤 했지요. 그러나 지금은 중앙 고속도로가 시원스레 뚫려 하루 일정으로도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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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전에 잠깐!〉
의상 대사를 향한 선묘 낭자의 사랑
의상 대사는 원효 대사와 더불어 신라의 대표적인 승려입니다. 원효 대사가 국내파라면 의상 대사는 유학파라고 할 수 있죠. 의상 대사는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화엄학’이라는 불교 학문을 배웠습니다. 신라로 돌아온 그는 왕의 명령을 받고 소백산 기슭에 절을 지었습니다. 이 절이 바로 부석사인데, 부석(浮石)이란 ‘뜬 돌’ 또는 ‘뜬 바위’라는 뜻입니다.
절의 이름이 부석사가 된 것은 이 절을 세운 의상 대사를 향한 선묘 낭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에서 비롯됩니다. 의상 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할 때 잠시 머물던 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 선묘라는 아가씨가 살았는데, 그녀는 의상 대사에게 반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유혹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의상 대사가 꿈적하지 않자, 선묘 낭자는 그의 제자가 되어 의상 대사의 공부에 도움을 주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은 흘러, 의상 대사가 공부를 마치고 신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선묘는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그를 쫓아갔지만 배는 이미 떠나 버린 뒤였죠. 선묘는 용이 되어 의상 대사를 모시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빌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강으로 뛰어들었죠. 용으로 변한 그녀는 배를 보호하며, 의상 대사가 무사히 귀국하게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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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한 의상 대사는 소백산 기슭인 봉황산에 절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종파의 무리(산적이라는 말도 있음)들이 절을 짓지 못하도록 방해를 놓았습니다. 이 때 용으로 변한 선묘가 나타나 커다란 바윗돌을 들었다 놨다 하며 위협하자 그들이 달아나버렸고, 그 자리에 의상 대사는 무사히 절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뒤 ‘돌이 공중에 떴다.’ 하여 절 이름을 ‘부석사’라고 지었답니다.
이런 전설을 들을 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지어낸 이야기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전설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랍니다. 다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선묘 낭자와 의상 대사의 이야기를 그저 단순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60점짜리 해석입니다. 숨어 있는 행간의 뜻을 생각할 수 있어야겠죠.
부석사를 신라의 수도 경주가 아닌 영주에 세웠던 이유를 짐작해 볼까요? 불교를 전파하겠다는 뜻도 있었겠지만 또 다른 뜻은 신라의 세력 확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삼국 시대에 불교는 나라를 하나로 통합하는 데 긴요하게 이용된 수단이었지요. 그 당시 시대 상황을 보면, 신라가 676년 삼국을 통일하였지만, 소백산 죽령(대재) 이북은 그전까지 고구려 지역이었습니다. 부석사가 있는 곳은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 지역이었죠. 신라는 국토는 통일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하나로 만들지는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부석사를 세우는 일을 방해한 사람들은 토착(대대로 그 땅에서 살고 있음) 세력이나 고구려 세력 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죠. 그래서 신라는 이런 사람들을 불교를 통해 정신적으로 융화시키려고 했던 겁니다. 이제 부석사가 세워진 속뜻을 이해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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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문화유산 살피기〉
은근한 아름다움이 있는 부석사
부석사를 향해 오르막길을 한참 걸어가면, 일주문이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보통 절에 들어서기 전에 처음 만나는 문을 일주문이라고 합니다. 일주문 양옆으로는 사과밭이 있어, 사과 꽃이 피는 4월과 사과가 열리는 10월이면 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날렵하고 아름답게 생긴 당간 지주가 보입니다. 당간 지주는 깃발을 세우는 데 쓰는 당간이라는 기둥을 쓰러지지 않게 하려고 만든 두 개의 받침대입니다. 당간 지주를 지나면 높직한 돌계단 위에 서 있는 천왕문이 보입니다. 부석사는 의상 대사가 창건(처음으로 세움)한 이래 고려 말에 대규모로 다시 지어졌습니다. 이때 무량수전과 조사당 건물이 지어져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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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에서 바라보면 부석사에 딸린 건물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신기하게도 부석사는 한꺼번에 자신의 모습 전부를 보여 주지 않습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건물이 하나하나 나타나는 숨김의 아름다움이 있답니다. 또 절의 전체 구도를 이루는 중심축이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양루에서 살짝 꺾이도록 설계했어요. 그 결과 부석사의 중심 건물인 무량수전이 다시 한 번 자연스럽게 숨김의 미를 간직하게 되었지요. 부석사는 이처럼 건물을 뒤쪽에 숨겨 놓았다가 하나하나 보여 주는 멋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조상이 직접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은근한 아름다움을 추구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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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는 산속에 지어진 절입니다. 이런 절을 산지가람(山地伽藍)이라고 합니다. 신라 시대에는 대부분의 절이 사람이 많은 도시나 평지에 세워졌습니다. 그렇지만 부석사는 산기슭에 돌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산지 가람이 부석사처럼 축대를 쌓아 만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런 돌 축대는 경주 불국사에서 볼 수 있지만, 부석사처럼 산지 지형을 적절히 이용하여 여러 단으로 쌓아 만든 예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부석사 첫 관문인 일주문에서 이 절의 중심이 되는 무량수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축대와 계단을 만들어 건물을 지은 것은 9품(부처님이 계신 곳에 9개의 등급이 있다는 말. 이 등급은 살아 있을 때 했던 착한 일에 따라서 정해진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굳이 이런 종교적인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조상들의 생각과 뜻을 새긴다면, 부석사를 제대로 감상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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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를 대표하는 아름다움, 무량수전
무량수전은 고려 시대 목조 건물인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조사당, 수덕사 대웅전,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등 몇 개 되지 않는 고려 시대 건물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글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직접 가서 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답니다. 무량수전은 두 가지 독특한 건축 기법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배흘림 기법입니다. 배흘림이란 기둥의 가운데 부분을 불룩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먼 거리에서 봤을 때 기둥의 가운데 부분이 가늘어 보이는 착시 현상을 막기 위해 만든 것이죠. 두 번째는 귀솟음 기법입니다. 귀솟음이란 가운데 있는 기둥보다 귀 기둥, 즉 바깥쪽 기둥의 높이를 높게 하여 건물이 쳐져 보이는 현상을 막는 방법입니다. 군더더기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건물, 소백산 자락의 산봉우리와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건물이 바로 무량수전이랍니다. 무량수전 안에는 다른 전각(커다란 집을 이르는 말)과 마찬가지로 불상을 모시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불상이 측면(옆면) 즉 서쪽에 모셔서 동쪽을 바라보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이곳에 있는 불상이 서방 정토(서쪽으로 아주 먼 거리 있는 아미타불이 계신 세계)에 있으면서 극락을 다스리는 아미타불이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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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답사의 끝은 무량수전이 아니랍니다. 끊어져 버린 길 때문에 무량수전으로 모든 답사가 끝날 줄만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3층 석탑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가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3층탑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조그만 산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산길은 부석사가 마지막으로 보여 줄 비장의 무기를 숨겨 놓은 곳으로 가는 길이지요. 산길을 오르다 보면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오른쪽에는 부석사를 만든 의상 대사를 모신 조사당이, 왼쪽에는 석조 불상들이 많이 있는 자인당이 있습니다. 이 두 건물을 보고 나면, 비로소 부석사 답사가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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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갈무리!〉
부석사에 관한 전설, 건물의 특징, 종교적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이번 부석사 답사의 끝은 ‘전부를 보여 주지 않는 숨김의 아름다움’이라는 한마디 말로 끝맺음을 하려고 합니다. 한 번에 전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갈수록 자신을 하나하나 드러내는 부석사는 우리나라 절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런 부석사는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가슴 벅차오름이 있습니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소백산 자락을 응시할 때, 가슴에 사무치는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면, 우리도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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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중학 독서평설 2월호
 
 
글/사진 우일신 정표채(다음 나의문화유산답사 대표)
본 내용은 지학사 중학 독서 평설 2월호 기고 내용입니다.  .  http://cafe.daum.net/7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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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손을 내밀면 비켜서거나 물러서지 마라. 사랑을 하기도 전에 사랑의 비극적인 종말을 예감해 외면한다는 것은 바보짓이다. (이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