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승인은 유권자의 무지때문"…"민주주의의 맹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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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정치학자 "좋은 선택을 위한 정치적 정보를 얻는 비용이 이득보다 커"
"유권자 수준이 후보자 수준…현대 민주주의에선 해법 없다"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승용차나 휴대전화를 살 때는 구매할 상품들을 비교해보기도 하는 등 꼼꼼히 살펴본다. 제대로 고르면 이득이 되고 잘못 선택하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선택의 잘잘 못에 따른 손익이 개개인에게 분명히 보인다.
<美대선> 환호하는 트럼프 지지자 [EPA=연합뉴스〕
반면 정치에선 다르다. 선거를 위한 투표 때 유권자의 선택은 집합적으론 대단히 중요하지만, 유권자 개개인의 선택은 그렇지 않다.
미국 조지타운대 제이슨 브레넌 조교수는 한 대학교수가 자신의 수업을 듣는 수강생 2억1천만 명(미국의 2012년 대선 때 유권자 총수)에게 3개월 후 시험을 볼 텐데 개인의 점수를 매기지 않고 모두의 점수를 평균해 모두에게 같은 점수를 주겠다고 한다면, 아무도 힘들여 공부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 결과 평균 학점은 F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브레넌은 "이것이 민주주의 작동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유권자 개개인에겐 정치적 정보를 얻는 비용이 이득을 크게 초과하기 때문에 "어리석고 그릇되며 헛된 믿음"에 빠져도 손해 볼 게 없다. 개인의 한 표가 선거 결과를 결정하는 힘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미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표는, 경쟁하는 정책의 비교를 통한 선택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존 세계관이나 소속집단에 대한 충성의 표시일 뿐이다.
그는 "민주주의는 국민의 의지 구현이라고들 하지만, 그 국민이 자신들이 뭔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면?"이라고 묻고 이번 미국 대선에서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10일(현지시간) 포린 폴리시 기고문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유권자들이 무지해서, 말 그대로 무지해서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대선 결과를 "바보들의 무도회"라고 불렀다. 역대 미국 선거에서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은 유권자들이 그렇게 획일적으로 특정 후보(트럼프)를 거부하고, 교육을 덜 받은 층이 그렇게 획일적으로 특정 후보(트럼프)를 지지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학력에 따른 차별 논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 주장이지만, 실제 이번 대선에서 백인 유권자층 가운데 대학교육 학력의 유무에 따른 지지성향 차이는 선거 기간은 물론 투표 후 출구조사에서도 확인됐다.
미국의 전국 선거합동조사단과 에디슨리서치의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백인 대졸' 유권자는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간 지지율이 49대 45%로 갈렸으나, '백인 고졸 이하'에선 67대 28%로 격차가 컸다. 인종 변수를 제외하곤 남녀 성이나 나이, 수입, 거주지 등 다른 변수들에 따른 격차보다 크다.
트럼프 측이 '힐러리는 기득권층인 대졸 유권자층의 이익을 우선하지만, 트럼프는 보통사람들을 위하기 때문'이라고 반론한다면 틀린 말이라고 브레넌 교수는 말했다. 공화당 후보 경선 때 트럼프 지지자들의 연간 평균 소득은 7만2천 달러(8천390만 원)로, 비록 부자는 아니지만, 미국 전국 평균과 클린턴 지지자들의 평균을 웃도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대선 결과에 대해 '기득권층에 대한 반발로 아웃사이더인 트럼프를 지지한' 결과라는 일반적 해석에도 사실 몇 가지 의문의 여지가 있다. 트럼프가 워싱턴 정가에 대해선 아웃사이더이지만, 미국 사회에선 누구보다 큰 부를 가진 기득권층이자 세계화의 수혜자로서 부자들을 공격하는 정책을 쓸 가능성은 적다.
실제로 트럼프를 지지한 사람들이 직접적이고 주된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은 기득권을 가진 부유층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처지가 자신들보다 못한 이민자, 이방인들이었다. 백인 중하위층이 멀리 있는 부유층이 아니라 이민자들이 바로 가까이서 자신들의 일자리를 직접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해 반이민의 목청을 높인 트럼프를 지지한 것이다.
월가의 부유층과 이들의 부를 가능케 한 세계화와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구조를 공격한 사람들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아니라 민주당 후보경선에서 클린턴과 맞섰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지지자들이었다. 주로 젊은 층인 이들은 샌더스가 무대에서 내려오자 모두 클린턴으로 몰려가지 않고 일부는 제3 후보로 돌거나 투표장에 나오지 않는 등 흩어졌다.
이들의 구호와 트럼프 지지층의 행동은 본래 합쳐질 성격이 아닌데, 세계화라는 개념 때문에 이번 선거에선 마치 같이 움직인 것 같은 결과를 낳았고 해석의 착시를 일으키고 있다.
브레넌 교수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무지는 지난 60여 년간 정치학의 주된 연구 과제였으며, 그 결과들은 실제로 유권자들이 일반적으로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자들이 누구인지는 알지만, 그 외에는 구체적 정책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유권자들이 아는 게 별로 없는 이유 역시 정치학에선 이미 결론이 나 있다. "사람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가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다. 맨 위에서 설명한, 개인이 상품을 구매할 때 선택과 투표할 때 선택 간 비용-이익 계산의 차이를 말한다.
브레넌 교수는 공공여론 분야 창시자로 알려진 정치학자 필립 콘버스의 말을 인용, 유권자들의 정치적 정보 수준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은 아는 게 없고, 일부는 모르는 것보다 더 적게 알고(즉 단순히 무지한 게 아니라 체계적으로 그릇된 정보를 알고 있고), 일부는 많이 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 수준은 일반적으로 대학 졸업자가 고등학교 졸업자보다 높고, 고졸자가 그 미만의 학력자보다 높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렇다고 학교 교육 탓은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모든 학교에선 투표를 잘할 수 있기 위한 것을 가르치지만, 유권자들은 투표를 위한 정보가 별 쓸모 없기 때문에 잊어버리며, 쓸모없는 이유는 개개인의 투표는 전체 투표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으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 브레넌 교수는 거듭 주장했다.
그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낮은 수준의 정보를 가진 유권자가 고수준의 정보 유권자 수를 크게 앞선다"며 "후보자들의 수준은 유권자들의 수준을 반영한다"고 말하고 "정치적 무지의 문제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없다"고 덧붙였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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