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여 엄마처럼 직원을 돌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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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CEO여 엄마처럼 직원을 돌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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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 퇴계가 실천한 모성 리더십에서 찾아야
요즘 기업체 CEO들은 직원 챙기기에 바쁘다. 직원의 신체 건강은 물론 정신 건강도 챙겨주고 사생활 관리까지 해준다. 더 나아가 재테크까지 신경써준다. 21세기를 꾸려가는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은 윽박지르며 목표달성을 독촉하기보다 임직원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고 그들이 좀더 성장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 CEO 스스로 원칙을 지키는 데 철저하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마치 엄마가 자녀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동시에 훌륭한 인재로 키우기 위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21세기가 요구하는 ‘퇴계 리더십’이자 ‘모성 리더십’이다. 〈편집자 주〉
‘성공하려면 퇴계 리더십을 배워라’
퇴계 이황(1501~1570)은 수많은 제자를 길러 영남학파를 만든 조선 최고의 유학자다. 그래서 흔히 퇴계 이황을 근엄하고 권위적이며 전통지향적인 인물로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인간 퇴계를 들여다보면 그는 조선역사상 자녀 및 제자교육을 가장 철저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리고 매우 자애롭게 했던 인물이다. 요즘 대치동 엄마들의 치맛바람에 비유될 정도로 학문에 매진할 것을 극성스럽게 독려하면서도, 자상한 면모로 감동을 주었다. 또 손님이 찾아오면 귀천과 나이 고하를 가리지 않고 뜰 아래로 내려가서 맞이하고, 술과 밥상을 차려 정성껏 대접하는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삼보컴퓨터 명예회장인 이용태 퇴계학연구원 이사장은 “퇴계는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잘난 척하지 않고 따뜻하게 대했다”며 “그의 겸손함은 제자 중 기대승과 학술논쟁을 벌여 자기의 학설을 고치고 기대승의 학설을 받아들인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예담)의 저자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은 “퇴계는 자녀나 제자의 공부를 독려할 때도 술과 고기, 그리고 편지를 함께 보냈으며 겨울에 손자에게 줄 귀마개를 사주기 위해 3개월간 하인을 시켜 시장을 꼼꼼하게 돌아보게 했다”고 전했다. 값비싼 귀마개를 사주면 손자가 자칫 물질적으로 나태해질까봐 값이 싸면서도 질이 좋은 것을 사주기 위해 3개월간이나 시장조사를 한 것이다. 이는 곧 손자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밖에 없다.
손님 찾아오면 뜰아래 내려가 맞아
퇴계는 또한 원칙주의자였다. 이로 인해 증손자를 잃기도 했다. 안도의 첫아들이 태어났지만 어미젖이 모자랐다. 안도는 할아버지인 퇴계에게 편지를 보내 유모를 구해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퇴계는 “유모로 갈 수 있는 하인도 해산한 지 삼사 개월밖에 안 돼 유모가 올라가면 그 아이는 죽고 만다. 내 자식 키우려고 어찌 남의 자식을 죽인단 말인가”하며 거절했다. 결국 증손자는 영양실조로 두 돌을 넘기지 못한 채 죽었다고 한다.
500년 전 퇴계가 실천한 리더십이 21세기 가장 강력한 리더십으로 부상하고 있다. 산업화 시대에는 남성적·수직적인 리더십이 필요했다면 지식시대, 감성시대인 지금은 여성적·수평적인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김용태마케팅연구소 김용태 대표는 “산업화시대에는 대량생산, 대량유통을 위해 기업이라는 조직체가 만들어졌고, 기업 내에서 분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이를 통합하고 끌고 나가기 위해 가부장적 리더십이 주효했으나 산업화시대의 패러다임이 힘을 잃고 정보화시대로 이동하면서 더 이상 가부장적 리더십은 통하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대신 직원을 대할 때 원칙을 지키되 엄마처럼 꼼꼼하면서도 자상하게 배려하는 모습을 통해 감동을 주는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다. 바로 ‘퇴계 리더십’이자 ‘모성 리더십’이다.
정문술(69) 미래산업 전 회장의 행보는 퇴계 리더십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벤처업계 대부’로 불리던 정 회장은 지난 2001년 1월 63세의 한창 나이에 회사를 직원들에게 물려주며 은퇴를 선언했다. 자식들이 없는 것도, 능력이 달리는 것도 아닌데도, 경영권을 종업원들에게 물려주고 은퇴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요즘은 교회까지 세습하려는 목회자가 적지 않은 세상이다. 정 회장은 주식회사는 사장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므로 2세에게 경영권을 넘길 권리는 창업자에 없다는 소신을 밝혀왔다. 정 회장은 또 바이오테크 분야의 고급 인재를 키우기 위해 KAIST에 300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현직에 있을 때 그리고 퇴임할 때 그의 소망은 미래산업이 ‘착한 기업’이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착한 기업이 되려면 사람들이 먼저 그렇게 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윗사람들이 먼저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게 정 회장의 생각이다. 또 직원들이 사장과 회사를 진심으로 믿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친인척을 병적으로 멀리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정문술씨가 퇴계 리더십 결정판
지난 1971년 세상을 뜬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도 마찬가지. 유 박사도 관행과 상관없이 혈연관계가 없는 회사 간부에게 사장직을 인계함으로써 전문경영인 등장의 길을 열었고,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 기업윤리의 모범을 보였다.
역시 기업을 성공궤도에 올려놓은 후 전문경영인을 세워놓고 아름다운 퇴장을 한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전 사장과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이재웅 대표도 퇴계 리더십 또는 모성 리더십을 실천한 CEO다. ‘엄마형 리더십’(명진출판)의 저자 우경진 수원대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는 “리더는 이제 구성원을 윽박지르고 꼼짝 못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희망을 주고 성장의 기회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안철수연구소와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이런 리더십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직원을 배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는 것. 또 다음커뮤니케이션에는 노조가 없는 대신 중간간부 정도로 구성된 ‘서비스 위원회’가 있다. 서비스 위원회는 내부고객인 직원 만족을 위해 애쓰는 기구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기업들은 직원들 복지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사내에 피트니스센터를 설치하거나 금연성공펀드, 비만탈출펀드를 운영하는 곳도 있고, 가정불화, 직장 내 갈등 등으로 발생하는 스트레스 관리 차원에서 정신건강까지 챙기는 곳도 늘고 있다. 하나은행, 한국전력기술, LG생활건강,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은 외부 상담업체에 의뢰, 직원의 정신건강을 돌본다. 휴렛팩커드(HP)의 전 CEO 칼리 피오리나는 “CEO의 역할은 직원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활력을 불어넣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또 허브 켈러허 사우스이스트항공 전 회장은 “직원에게 근심거리가 생겼을 때는 즉각 도와주라”며 임직원에 대한 감성관리를 강조했다.
특히 요즘에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재테크에 대한 학습기회를 제공하는 기업까지 생기고 있다. 미술 가정방문업체인 ‘홍선생교육’의 여미옥 대표는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를 읽다 지식이 있어야만 부자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지난해 12월 임직원을 대상으로 ‘가계자산운영’에 대한 특강을 열었다. 동시에 본사 직원을 대상으로 ‘베트남펀드 가입 증정식’을 하기도 했다. 직원당 100만 원씩 넣어둔, 5년간 찾을 수 없는 펀드를 선물로 준 것이다. 여 대표는 “어린 시절을 풍족하게 보낸 요즘 20~30대는 돈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며 “베트남펀드 가입과 경제전문가 초빙 강좌를 통해 우리 직원들이 경제공부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설에는 직원들의 떡값을 CMA 통장에 넣어줬다. 여 대표는 “직원들이 통장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봤더니 하나같이 이율이 얼마 안 되는 일반 은행통장에 넣고 있었다”며 “통장에 따라 이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 이율이 높은 CMA 통장을 개설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직원에 재테크 기회까지 제공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은 “직장보다 직업을 우선시하고 처우가 조금이라도 나은 곳이면 쉽게 이직을 하는 요즘 세태에서는 남성 CEO든, 여성 CEO든 엄마처럼 직원을 돌보지 않으면 이직을 막을 수 없다”며 “부동산 폭등, 저금리, 노후 걱정 등으로 불안해하는 임직원을 위해 이제는 CEO가 직접 임직원의 재테크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령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아파트 분양 공고가 있을 때 회사가 나서서 청약안내를 해주고 은행과 연계해 회사가 대출보증을 서줌으로써 임직원이 비교적 저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식이다. 최 소장은 “재테크는 시간과 발품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업에서 조직적으로 임직원을 위한 재테크 부서나 담당자를 두면 인력 유출이 상당히 감소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우경진 수원대학교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는 “가족에게 서비스하듯 직원들의 정서를 파고드는 서비스 정신이야말로 모성 리더십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퇴계 리더십 또는 모성 리더십은 섬김(Survant) 리더십과는 다르다. 섬김 리더십은 리더 자신을 가장 낮은 곳에 두고 현장 직원에게 무제한의 권한을 선사하는 것이라면 퇴계 리더십, 모성 리더십은 리더가 자신의 자아를 유지하면서 상대의 자부심과 자신감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서비스를 고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선택과 방법론에서는 아랫사람에게 자율권을 주지만 설득과 대화를 통해 합의된 공동의 목표를 위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다.
퇴계 리더십이나 모성 리더십이 비단 기업을 운영하는 CEO에만 필요한 덕목은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개개인에 필요한 덕목이다. 말랑말랑하면서 따뜻한 마인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용태 퇴계학연구원 이사장은 “과거 리더십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목적을 달성해내는 능력이었으나 지금은 좀더 광범위한 의미로 쓰여서 말단직원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면 그 사람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며 “우리 아이들이 이 같은 리더십을 갖추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인성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을 자랑하고 있지만 교육 에너지가 지식과 입시, 출세 위주의 교육으로 쏠려 있다. 때문에 이 상태로 가면 국민소득은 계속 올라간다 해도 세계에서 존경받는 국가가 결코 될 수 없다는 게 이 이사장의 주장이다. 이 이사장은 “과거에는 아이들에게 가정교육을 특별히 하지 않아도 대가족이 함께 살면서 배우는 게 많았고 한동네에 대대손손 살기 때문에 이웃들을 통해 터득하는 것도 많았지만 지금은 아파트에 살면서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학교와 학원만 전전하는 탓에 사회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가정이든 학교든 지금과 같은 사회구조 속에서 잃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인성교육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효찬 소장도 “자녀경영을 잘하면 가문경영과 기업경영, 그리고 국가경영이 잘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이는 곧 어려서부터 원칙을 지키되 유연하고 남을 잘 배려하는 퇴계 리더십 또는 모성 리더십을 윗사람의 모범적 행동을 통해 우리 아이들 몸에 배게 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된다”고 말했다.
퇴계 리더십을 구현하기 위한 10가지 법칙 1. 책임감이 기본이다. 2. 원칙을 지켜라. 3. 버드나무처럼 휘는 유연성을 가져라. 4. 윗사람이 착해야 아랫사람도 착하다. 5. 고객처럼 직원에게 서비스하라. 6.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대의명분 이상의 알찬 비전을 제시하라. 7. 설득과 대화를 통해 합의된 공동목표를 위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라. 8. 목적이 아닌 관계지향적 네트워크를 중시하라. 9.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라. 10. 차세대들의 바른 인성교육에 신경을 써라. |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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