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

별들도 사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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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도 사랑을 한다.

별들은 서로 미워하지 않는 법이다.

크거나 작거나, 동그랗거나 길쭉하거나, 짜부라들었거나 온전하거나, 흐리거나 밝거나 간에, 별들은 아무도 미워할줄 모른다.

저마다의 크기와 저마다의 모양과 저마다의 밝기로, 저마다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몫만을 차지한채, 별들은 저마다 어둠의 바다 위에 떠서 반짝거리고 있을 뿐이다.

두짝의 고무신처럼 어딜 가든 정다운 사랑도 있는 법이고, 꼬부랑 할머니의 꼬부랑 지팡이처럼 닮은꼴 사랑도 있는 법이며, 상이 군인의 목발처럼 서로 다르지만 저 한쪽만으로는 결코 바로 서지 못하는 간절한 사랑도 있는 법이다. 북과 북채처럼 맨날 두들겨 맞고 두들겨 패는 딱한 사랑도 있고, 닮은 구석이라곤 눈꼽만치 없어도, 정물화속의 사과와 꽃병마냥 함께 나란히 서면 신통하게도 더없이 자연스레 어울릴줄 아는 그런 그윽한 사랑도 있는 법이다.

허수아비와 참새같이 서로 만나기만 하면 쫓고 달아나야만 하는 얄궂은 사랑도 있고, 물위에 뜬 기름처럼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려 해도 어쩔수 없이 헤어져 떠돌아 다녀야만 하는 막막한 사랑 또한 있는 법이다.

어디 그뿐이랴. 돌멩이와 발부리 마냥 서로 껴안기만 하면 아픈 상채기를 만들어 피를 흘리게 만들뿐인 애처로운 사랑도 있고, 꽃을 피울수 없는 까닭에 찾아오는 벌도 나비도 없이, 오직 저 혼자 열매를 맺고 씨앗을 삼켜야하는 무화과나무의 고독한 사랑 또한 세상엔 있는 법이다.

그렇지만, 그런 모든 형태와 빛깔, 관계들은 별들에겐 언제나 똑같은 사랑에 지나지 않는다. 미움이나, 증오, 시기, 탐욕, 질투, 원한 따위 한없이 칙칙하고 고약한 이름들이야 별은 애당초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타락한 세상에 내려와 어느결엔가 타락해버리고만, 병든 별들이 지어낸, 병든 사랑의, 병든 이름들인 까닭이다.

병든 영혼을 지닌 병든 별들은 다만 병든 사랑을, 병든 노래만을 부를 따름이다. 그들은 진실한 사랑의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진실한 별들이 그들을 위해 불러주는 맑고 투명한 사랑의 노래말을 듣지 못한다. 그들은 한평생 수없이 많은 다른 별들을 이 세상에서 만나고 또 지나쳐 보내면서도, 그들의 얼굴과 눈짓에 숨은 사랑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귀멀고 눈멀어 다만 그 수많은 소중한 별들과 헤어져 떠나 보내고 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소중한 별들과의 이별을 헛되이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인가…

이제는 더러 이름도 얼굴 모습조차도 아슴프레하게 잊어버리고 만 사람들. 더러는 어느 한적한 들녁 느티나무 아래서, 혹은 잿빛 도시의 후미진 골목길 어느 대포집 에서라도 우연히 스쳐 지나치듯 만났던 사람들. 혹은 때묻고 허기진 우리들 유년 시절의 추억속에 한장 빛바랜 사진으로 남은 얼굴들.

그래, 그들은 모두가 별이었다.

이 지구라는 이름의 한 척박한 별을 찾아와, 내곁에 잠시 혹은 한동안 머물다가 떠나가 버리곤했던 그 수많은 낯익은 별들과 그들의 이름을.

더러 그들 중 대부분은 오래전 이 피곤한 대지의 여행을 끝마치고 먹빛 맑은 밤하늘의 별로 되돌아 갔을 것이다. 또 더러는 지치고 병든 별 하나로 아직 이땅의 어느 후미진 골목 길을 터벅터벅 헤메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앞으로도 오래도록 잊지 않을 것이다.

먼 옛날, 내게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그들의 맑고 투명한 눈빛을. 슬픔의 기쁨, 고통과 사랑의 온기를 나누어 주던 그 따뜻한 손길의 감촉을.

그리고, 그들 모두가 이제는 저 밤하늘 어디선가 저마다 하나씩의 영롱한 별이되어 반짝이고 있음을…



 
- "그 섬에 가고싶다" 본문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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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둘 사이를 파괴하고 싶지 않으면, 그리고 오래 지속시키고 싶으면, 어느 정도의 예의는 필요한 법이다. (필립 체스터필드의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