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석의 스마트 모델링] 지적 호기심 없는 20대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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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읽고나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좀더 열심히 잘 살아 보자는 얘기지요... ^^;
[류한석의 스마트 모델링] 지적 호기심 없는 20대 노인들
류한석 (컬럼니스트)
2003/05/19
지난 주 목요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항상 이쯤만 되면 생각나는 선생님이 한 분 있다. 필자를 가르친 적은 없지만, 필자가 언제부터인가 마음의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는 선생님. 1994년 5월의 어느 날, 필자의 직장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라는 잡지에 비주얼 베이직 3.0에 대해 연재하시는 분 맞죠? 제가 꼭 한번 만나서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오늘 점심때 시간이 되시는지요? 제가 사무실 근처로 시간 맞추어 찾아가겠습니다."
그 전화를 받기 며칠 전에도 한 독자가 필자의 사무실로 갑자기 컴퓨터를 들고 와서 하드웨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막무가내로 부탁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그런 갑작스러운 만남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찾아오겠다는 독자를 무조건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장소로 나가보니 웬 할아버지 한 분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그 할아버지가 바로 필자에게 전화를 한 독자였던 것이다. 그는 당시 72세였으며 스프레드시트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초등학교 평교사로 정년퇴임하고 성적 처리 등 학교 업무의 전산화를 위해 당시 잘 나가던 DOS용 스프레드시트인 로터스1-2-3, 쿼트로 프로 등을 주로 사용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한글 윈도우 3.1에서 구동되는 엑셀(MS Excel)을 보고는, 앞으로는 엑셀이 대세라고 생각해서 공부 중이라고 했다.
이미 퇴임한 상태인데 엑셀은 왜 공부하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아들이 운영하는 작은 의류 사업체에 필요할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다. 또한 손자, 손녀에게도 컴퓨터를 가르쳐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엑셀을 사용하다보니 VBA(Visual Basic for Application) 기능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필자는 VBA와 비주얼 베이직은 차이가 있으며 프로그래밍 경험이 없으면 비주얼 베이직을 배우는데 어려울 수 있으며 시간도 꽤 걸릴 것이라고 진지한 조언을 했지만, 그 노인의 열정은 오그라들지 않았다. 당시는 비주얼 툴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였고 인터넷도 활성화되지 않아서 서적이나 자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 노인은 종종 필자에게 연락을 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다. 그는 자신이 평생을 선생님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할아버지’보다 ‘선생님’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가르침을 받아본 적이 없는 분께 선생님이라고 부르려니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의 강한 지적 호기심과 열정에 대한 존경심을 바탕으로 필자는 선생님 이상의 선생님이라는 느낌을 갖게 됐다.
선생님은 집 근처에 작은 공부방을 하나 얻어 그곳에 자신의 PC를 놓고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을 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그리고 공부방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예전에 그는 쿼트로 프로에 대한 서적을 집필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엑셀에 대한 서적을 만들고 싶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가 던져 준 깨달음
이 일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필자는 그 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고 아직까지도 그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일은 당시 필자의 상황과 어우러져 많은 생각을 던져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신입사원으로 일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던 필자는 IT 업종과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에 많은 실망을 하고 있었다. 무슨 거창한 실망은 아니다.
당시 회사의 주된 개발도구는 DOS 기반의 COBOL이었는데, 필자는 COBOL 프로그래밍에 소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윈도우와 비주얼 툴을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당시 사내에서 윈도우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필자가 "이제 차세대 개발 도구는 비주얼 베이직과 같은 비주얼 툴입니다"라고 얘기해도 동료, 선배를 비롯하여 과장, 부장 등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었다. 회사 내에 몇 십 명의 프로그래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C나 COBOL만 사용할 뿐이었고, 윈도우는 기업의 IT 개발 환경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상사로부터 핍박(?)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당시 이미 외국에서는 비주얼 툴이 인기를 얻고 있었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비주얼 툴이 대세인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필자가 다니던 회사를 비롯하여 여타 많은 회사와 프로그래머들은 미래에 대한 준비 소홀의 대가로, 커다란 비용을 치르게 됐다. 윈도우 기능을 맛본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비주얼 툴로 개발해주기를 원했고, 그로 인하여 파워 빌더, 비주얼 베이직 등을 1~2주일 교육하고 몇 천만 원을 벌어들이는 회사들이 성행했을 정도였다. IT업계에서 그런 일은 몇 년을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
필자는 동료와 선배들이 새로운 기술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얘기하면 야근 때문에 자기계발 할 시간이 없다거나, 배울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과도한 업무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지만, 그때의 기술은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다. 자기계발은 여유가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며,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서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래 기술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한 상사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 "너도 나이 들어 보면 안다"는 말을 듣기 일쑤였고 그것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나이 들면 정말 그렇게 될까?"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것이 나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아니 상관이 있다 해도 의지로서 극복할 수 있음을 증명했던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IT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것에 관심이 별로 없거나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본다. 필자는 90% 정도의 현업 IT 엔지니어들이 보수적이고 자기계발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주장의 객관성과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개인의 탓이라기보다는,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 또한 크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에서 거시적/미시적인 논의가 필요하고 이 글의 주제를 벗어나므로 여기에서 논하지는 않겠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새로운 것을 수용하고 사용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당연히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데에는 반드시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하며 특히 엔터프라이즈 환경에서는 무척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개인의 지적 호기심과 열정에 대한 것임을 분명히 해둔다.
선생님을 통하여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70대와 도전하지 않는 20대" 중 누가 더 멋있고, 누가 더 잘하고, 누가 더 생산적인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선생님과의 만남 이후로, 필자는 지적 호기심과 열정을 종교(?)로 삼게 되었다. 신기술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IT산업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똑똑함도 아니고 성실함도 아니고 강한 지적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지적 호기심이 없으면 무엇이든 시작이 될 수 없고, 열정이 없으면 모든 난관을 극복하면서 마지막에 도달할 수 없다.
스승의 날이 되면 특히 선생님이 그립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상태이지만 아직도 그 공부방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본다. @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좀더 열심히 잘 살아 보자는 얘기지요... ^^;
[류한석의 스마트 모델링] 지적 호기심 없는 20대 노인들
류한석 (컬럼니스트)
2003/05/19
지난 주 목요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항상 이쯤만 되면 생각나는 선생님이 한 분 있다. 필자를 가르친 적은 없지만, 필자가 언제부터인가 마음의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는 선생님. 1994년 5월의 어느 날, 필자의 직장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라는 잡지에 비주얼 베이직 3.0에 대해 연재하시는 분 맞죠? 제가 꼭 한번 만나서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오늘 점심때 시간이 되시는지요? 제가 사무실 근처로 시간 맞추어 찾아가겠습니다."
그 전화를 받기 며칠 전에도 한 독자가 필자의 사무실로 갑자기 컴퓨터를 들고 와서 하드웨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막무가내로 부탁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그런 갑작스러운 만남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찾아오겠다는 독자를 무조건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장소로 나가보니 웬 할아버지 한 분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그 할아버지가 바로 필자에게 전화를 한 독자였던 것이다. 그는 당시 72세였으며 스프레드시트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초등학교 평교사로 정년퇴임하고 성적 처리 등 학교 업무의 전산화를 위해 당시 잘 나가던 DOS용 스프레드시트인 로터스1-2-3, 쿼트로 프로 등을 주로 사용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한글 윈도우 3.1에서 구동되는 엑셀(MS Excel)을 보고는, 앞으로는 엑셀이 대세라고 생각해서 공부 중이라고 했다.
이미 퇴임한 상태인데 엑셀은 왜 공부하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아들이 운영하는 작은 의류 사업체에 필요할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다. 또한 손자, 손녀에게도 컴퓨터를 가르쳐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엑셀을 사용하다보니 VBA(Visual Basic for Application) 기능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필자는 VBA와 비주얼 베이직은 차이가 있으며 프로그래밍 경험이 없으면 비주얼 베이직을 배우는데 어려울 수 있으며 시간도 꽤 걸릴 것이라고 진지한 조언을 했지만, 그 노인의 열정은 오그라들지 않았다. 당시는 비주얼 툴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였고 인터넷도 활성화되지 않아서 서적이나 자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 노인은 종종 필자에게 연락을 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다. 그는 자신이 평생을 선생님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할아버지’보다 ‘선생님’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가르침을 받아본 적이 없는 분께 선생님이라고 부르려니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의 강한 지적 호기심과 열정에 대한 존경심을 바탕으로 필자는 선생님 이상의 선생님이라는 느낌을 갖게 됐다.
선생님은 집 근처에 작은 공부방을 하나 얻어 그곳에 자신의 PC를 놓고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을 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그리고 공부방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예전에 그는 쿼트로 프로에 대한 서적을 집필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엑셀에 대한 서적을 만들고 싶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가 던져 준 깨달음
이 일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필자는 그 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고 아직까지도 그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일은 당시 필자의 상황과 어우러져 많은 생각을 던져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신입사원으로 일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던 필자는 IT 업종과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에 많은 실망을 하고 있었다. 무슨 거창한 실망은 아니다.
당시 회사의 주된 개발도구는 DOS 기반의 COBOL이었는데, 필자는 COBOL 프로그래밍에 소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윈도우와 비주얼 툴을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당시 사내에서 윈도우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필자가 "이제 차세대 개발 도구는 비주얼 베이직과 같은 비주얼 툴입니다"라고 얘기해도 동료, 선배를 비롯하여 과장, 부장 등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었다. 회사 내에 몇 십 명의 프로그래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C나 COBOL만 사용할 뿐이었고, 윈도우는 기업의 IT 개발 환경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상사로부터 핍박(?)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당시 이미 외국에서는 비주얼 툴이 인기를 얻고 있었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비주얼 툴이 대세인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필자가 다니던 회사를 비롯하여 여타 많은 회사와 프로그래머들은 미래에 대한 준비 소홀의 대가로, 커다란 비용을 치르게 됐다. 윈도우 기능을 맛본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비주얼 툴로 개발해주기를 원했고, 그로 인하여 파워 빌더, 비주얼 베이직 등을 1~2주일 교육하고 몇 천만 원을 벌어들이는 회사들이 성행했을 정도였다. IT업계에서 그런 일은 몇 년을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
필자는 동료와 선배들이 새로운 기술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얘기하면 야근 때문에 자기계발 할 시간이 없다거나, 배울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과도한 업무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지만, 그때의 기술은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다. 자기계발은 여유가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며,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서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래 기술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한 상사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 "너도 나이 들어 보면 안다"는 말을 듣기 일쑤였고 그것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나이 들면 정말 그렇게 될까?"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것이 나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아니 상관이 있다 해도 의지로서 극복할 수 있음을 증명했던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IT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것에 관심이 별로 없거나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본다. 필자는 90% 정도의 현업 IT 엔지니어들이 보수적이고 자기계발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주장의 객관성과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개인의 탓이라기보다는,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 또한 크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에서 거시적/미시적인 논의가 필요하고 이 글의 주제를 벗어나므로 여기에서 논하지는 않겠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새로운 것을 수용하고 사용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당연히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데에는 반드시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하며 특히 엔터프라이즈 환경에서는 무척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개인의 지적 호기심과 열정에 대한 것임을 분명히 해둔다.
선생님을 통하여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70대와 도전하지 않는 20대" 중 누가 더 멋있고, 누가 더 잘하고, 누가 더 생산적인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선생님과의 만남 이후로, 필자는 지적 호기심과 열정을 종교(?)로 삼게 되었다. 신기술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IT산업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똑똑함도 아니고 성실함도 아니고 강한 지적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지적 호기심이 없으면 무엇이든 시작이 될 수 없고, 열정이 없으면 모든 난관을 극복하면서 마지막에 도달할 수 없다.
스승의 날이 되면 특히 선생님이 그립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상태이지만 아직도 그 공부방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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