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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의 음악, 정치, 인생... "나는 말 잘 통하는 동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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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의 음악, 정치, 인생...
"나는 말 잘 통하는 동네 형"
미디어다음 / 심규진 기자 um05.gif
'297 세대'(20대, 90년대 학번, 70년대생)의 영원한 우상 신해철이 새 앨범 '개한민국'으로 돌아왔다.
지난 88년 그룹 '무한궤도'로 데뷔한 그가 '아이돌 스타'에서 '아티스트'로 진화하기까지 음악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확연히 달라졌다. 지난 대선에서 그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해 젊은 세대의 표를 결집시키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음반 시장은 mp3라는 기술의 진보에 뒤통수를 맞으며 100만장 시대에서 10만장 시대로 급전직하(急轉直下)했다. 신해철의 그룹 '넥스트'는 요즘 10대들의 구미에 맞는 꽃미남형 외모에 순정 만화의 주인공 같은 이름을 붙인 신세대들 멤버들로 재결성돼 '록계의 동방신기'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신해철 자신은 별로 변한 것이 없는 듯 보였다. 파격적인 형식미에 사회성이 강한 메시지를 전하는 넥스트만의 프로그레시브한 선율, 90년대 한국 음악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진취적인 도전 정신, 듣는 이를 몰입시키는 특유의 달변 등 지지자들을 이끄는 신해철의 카리스마는 1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작사, 작곡, 보컬, 엔지니어링까지 다재다능함을 뽐내며 천재성을 드러냈던 그는 그러나 '박제가 된 천재'가 되기 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세대와 소통하며 '현존하는 시대정신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재창조를 위한 여유와 개성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의 야만성에 분노를 느낀다는 그는 파병 반대 음악 'dear america'를 웹상에 무료 배포하고 학교 체벌 금지 법제화 추진 모임 카페(http://cafe.daum.net/nopunish)의 대표를 맡는 등 '일상의 정치'에도 열심이다.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네이션'의 애청자들은 신해철을 '마왕'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며 그와 반말로 대화한다. 방송에서조차 비속어를 즐겨 쓰며 새까만 후배들과도 '야자타임'을 고집할 정도로 권위의식을 싫어하는 그가 팬들의 '정신적 지주'로 막강한 권위를 누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의 음악을 들으며 시대의 고민과 아픔들을 함께 나눈 친구들에 대한 강한 책임감이 그에게 특별한 권력를 부여하는 것은 아닐까?
미디어다음이 7월 27일 새 음반 '개한민국'으로 돌아온 신해철을 만났다.

"개한민국 앨범 더 머리깨지게 철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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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은 헤비한 음악의 1편과 대중적인 2편으로 구성됐는데 1편에 있는 음악들이 굉장히 거칠고 가사도 직설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예전 음악들은 관조적인, 뭔가 철학적인 메시지가 있어서 좋았다는 팬들이 많았는데 이번 앨범은 사회 문제에 있어 너무 단정적인 목소리를 낸 것 아니냐는 불만도 있다.

글쎄…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번 앨범의 가사야 말로 머리 빠개지는 철학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하는데… 직설적인 메시지들을 듣는 사람들이 체크하려면 사안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자료 조사를 해야 할 정도다. 그만큼 현실을 연구해 봐야 하는 가사들이다. 그 노래들의 메시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다행이지만.

사회 현실에 대한 메시지를 다루면서 가사의 수위가 낮으면 역겨운 이야기가 되지만 반면에 표현들을 잘 걸러내지 못하고 너무 선정적인 것에만 주력하면 가사가 생명력을 잃고 예술적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시위 현장에서 한 두 번 쓰이고 말 것도 아닌데 가사의 수위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고 그 결과가 이번 앨범이다. 요번 같은 경우는, 예전처럼 '운만 띄우다가 뒤통수 갈기는 식'이 아니라 싸대기를 바로 갈기면 된다고 봤다.

-이라크 전쟁과 미국을 비판한 '디어 아메리카(DEAR AMERICA)' 중 싸이의 랩가사가 충격적이다.'딸래미, 애미, 애비, 코쟁이 모두 고통스럽게 죽여' 등 가학적이고 잔혹한 표현이 가득하다. 너무 무책임한 표현이라는 지적도 있을 수 있는데…

그 가사는 내 기준점을 벗어난 것이다. 근데 싸이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하는데 못하게 막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래퍼가 자기 랩 가사를 직접 쓰는 거는 당연한 거다. 나하고 기본 컨셉만 얘기한 것인데 '찢어죽여' 등의 엽기적인 표현으로 나갔다. 내 표현 방식하고는 너무 많이 다르지만, 싸이의 표현을 억압할 수는 없는 거다. 미국에 대한 감정은 mc 스나이퍼의 랩 정도가 나하고 맞다.

"사회 문제에 대한 지적과 저항,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어"
-신해철씨 정도면 유복하게 자랐다고 볼 수 있지 않나?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니고 명문대에 들어갔고, 반장도 했고, 특별히 저항과 일탈을 노래하는 동기가 있다면?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아주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나름대로 유복하지 않았고 시련도 많았다. 반장 좀 하고, 특별히 가난하지 않고 공부 못하지 않으면 주류 인생인가? 그런 편견에 수긍할 수 없다.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한국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많은 분노를 느꼈다. 국가의 틀이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주류 음악계의 '록 스타'들이 저항의 코드를 상품화할 뿐 비판과 일탈의 진정성이 없다는 편견에 대해 할말이 많은 듯 보였다. 이 대목에서 그는 사회의 '방어기제'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는 하고 싶은 음악은 많은데 편곡, 녹음 기술 등의 시스템이 없어서 걸림돌 해소 차원에서 방어적인 공부를 해야만 했다는 경험을 들려줬다. 자발성과 창의성이 허용되지 않고 수동적으로 굴러가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모두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 당시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뿐, 댄스 음악에도 진성성이 있다"
-'마이셀프' 앨범에는 사춘기 소년의 풋풋한 정서가 잘 녹아들어 있고, 넥스트 앨범에는 사춘기를 지나 청장년기로 가는 세대가 무릎을 치며 공감할 만한 가사들이 많았다. 이제 중년기에 접어들어간다고 할 수 있는데 현재하는 음악이 가진 감수성의 포지션은 무엇인가?

내가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를 부르던 시절에는 그렇게 음악을 알아가고 배워가는 게 엄청 재미있을 때였다. 신해철이 '안녕'을 부르면서 허리춤을 췄을 때는 그게 내가 하고 싶었던 거였다. '아버지와 나' 같은 노래도 그 나이 또래의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얘기였고, '날아라 병아리'가 들어있는 앨범도 철학에 대해 멋스럽고 싶어하는, 그 나이 또래의 지적 허영이 묻어나는 음악이다. 나는 지적 허영이라는 게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한 번쯤 빠지게 되는 시기가 있다고 본다.


-당시 앨범에서는 세상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해 두려워하고 궁금층에 찬 모습들이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답을 얻었나?

그렇다. 답이 나오는 것도 있고. 한 절반 정도는 답이 나왔다. 답이 나오지 않은 나머지 반도 그림은 그려진다. 40이 됐을 때 그리고 50이 됐을 때 쯤에 '이건 답이 나오겠구나' 하는 것 정도다.

"세상은 현세지옥(現世地獄),
씹을 건 씹으면서 스트레스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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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에 답이 있다고 본다면 세상을 보는 방식이 매우 부정적으로 바뀐 것 같다. 예를 들면 '아버지와 나'에서는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아버지에 대한 이해가 공존하고 있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아버지를 군림하는 존재로 아주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지금 내가 그린 세상의 모습은 '지옥도'다. 지옥도에서는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현대사의 질곡 속에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라고 보고 있다. 지옥도에는 물론 나도 있다. 나도 누군가의 등을 칼로 찌르고 있다.

천민 자본주의가 판치고 있는 이 사회에서는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사유해 봐야 공감하는 사람이 없고 할 일 없는 사람 취급 받는다. 그냥 책 사서 보는 게 빠르다. 그런 사람들을 가르치고 규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이 동시에 나를 가르치는 사람들이고, 나는 그들을 모이게 하고 목소리가 될 수 있도록 음악을 만든다.

그 와중에 씹을 건 씹자고 한 게 내 음악이다. 종교 같지 않은 종교 집단, 가부장제, 미국 그런 것들을 씹자고 하는 거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받지 않아도 될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라고 보는데 우리 나라 남자들 스트레스가 세계 최고다. 그게 목숨까지 앗아간다. 살벌한 사회에서 씹을 건 씹고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

"변방 콤플렉스 이제는 벗었다.
한국적 록의 정체성 중요"
-이번 앨범에서 종교집단을 비판하는 곡이 있는데 가사가 재미있더라. '너네가 크리스챤이면 나는 '건즈 앤 로지즈', 너네가 종교면 나는 비틀즈'로 대구(對句)가 되는데, 음악의 진정성, 순수성이라는 측면을 나타내기에 그 그룹들이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인가?

그건 그냥 빈정거림이고 블랙 유머일 뿐이다. 가사를 그렇게 쓴 것에 큰 의미는 없다. 종교집단을 비판하는데 내가 장황하고 심각하게 설명해 봤자 대학원 논문 수준도 안 되는 거니까.

-그렇다면 서양의 것을 차용한 한국 록의 정체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진지하게 인터뷰하게 응하던 그의 말투가 한층 더 진지해졌다.) 동양인으로서 외국 음악인 록을 한다는 것은 많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그래서 외국 유학도 갔었다. 넥스트를 하면서 이제 외국 음악의 겉모습은 비스무레하게 흉내내는 데까지는 성공했는데 그 다음엔 무슨 말을 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내가 찾은 답은 이런 거다. 인디언들이 신대륙에 살 때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서양의 것인 총을 들여와 사용하면서 자기들이 백인을 겨눌 때 썼다.

즉 록이라는 저항의 코드는 같지만 '누구를 겨누느냐'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born in the USA'를 불러도 우리 나라 노동자들을 위한 음악은 되지 못한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억압적인 유교 문화, 그리고 미국, 지역감정 등을 비판할 수 있다. 어떤 것을 겨냥하느냐가 중요한 지점이고 거기에 한국적 록의 정체성이 있다고 답을 내렸다.

-한국 예술가들이 변방 콤플렉스가 있다고 흔히들 얘기하는데 그것은 벗어났다는 얘기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외국 유학 시절을 회상하는 인터뷰를 하면서 게리무어가 옆 방에서 녹음하고 폴 영은 위층에서 기타연습하는 게 신기했다고 말했다. 서양 록 음악의 아우라에 대한 환상과 동경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우스운 얘기가 있다. '레인보우 아이즈' 라는,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있는데 그 노래가 알고 보면 우리로 치면 가요 톱텐 연말 결산에서 2등 정도 한 음악이다. 레인보우는 런던에서는 우리나라 송골매 정도고 폴 영은 김현식보다 아래 급의 가수다.
팝 음악이 뭔가 대중 음악보다 상위에 있다는 환상 같은 것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를테면 브리트니가 엄정화보다 위에 있다고 보는 것 같은.

-그렇다면 디제이덕과 베이비복스 파문에서 나타난 음악의 순혈주의 논쟁은 어떻게 보나? 문희준 사태에서도 록 음악에 대한 마초적 순혈주의가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인터넷 상에서는 '신해철이 문희준에게 격려를 해줬는지'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모든 것이 한쪽만 일방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양쪽이 잘잘못이 있는데. 베이비복스 문제만 보면 애초에 이하늘이 했던 발언의 취지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하늘이 미아리복스 발언만 안 했었더라도, 사과하는 일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댄스 음악하는 가수들도 나름대로의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양 쪽 모두가 음악에 대해 건전한 에너지를 갖고 있었는데 언론이 안 좋은 쪽만 부각해서 싸움을 부추긴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건전한 에너지냐면 베이비복스는 아이돌이지만, '투팍'이라는 힙합 뮤지션의 음악을 통해 가벼운 동요풍의 음악이 아닌 좀 더 깊어진 음악성을 추구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도 처음엔 '베복'이 투팍을 쓴다는데 왜 남들이 뭐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베복이 투팍을 차용한 방법을 보면 힙합 팬들이 화날만한 방식이었다.

문희준의 경우도 그렇다. 아이돌 스타 중 어떤 누구도 문희준처럼 '나 아티스트로 진화할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기특하게 생각할 건 인정해줘야 한다. 한편 씹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음악을 좋아해서 씹는 '놈'은 10%도 안 된다. 대부분은 문희준이 실패한 뒤에 정말 약자가 됐을 때 이지메에 참가하는 비열한 놈들이다.

지금도 문희준을 씹는 사람들이 있다면 정말 불쌍한 놈들이고, 걔네들이 나한테 와서 '형님이 문희준 한 번 손 좀 봐달라'고 하면 나야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 '니들 누구니? '그럴거다.

다만 문희준도 잘못한 점은 있다. '동원된 팬에 의해 해드뱅잉 연출하고 그걸 록이라고 주장하면 그 동안 록을 즐겨왔던 우린 뭐가 되나'라는 생각이 록 팬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방송에서 그 동안 전인권 한 번 출연시켜 주었나? 록 팬들에게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이다. 그런 문제들에 있어서 기획사나 문희준의 행동 자체가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균형감각을 중시한다고 밝힌 그는 록 음악의 아우라나 폼 잡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을 경계했다. 동시에 아이돌 스타에 대한 부당한 인신공격에는 쓴소리를 참지 않는다. 그는 최근 '신해철의 앨범이 동방신기도 돈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일갈한 오마이뉴스의 기사에 반론을 펴며 인터뷰, 기고 거부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그 글에서 "자신의 음악을 동방신기 수준으로 폄하해서 화가 난다기 보다는 오히려 수많은 소녀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아이돌 음악에 대한 무조건적인 멸시가 안타깝다"고 했다.

꽃미남들로 넥스트 멤버를 구성하면서 '록계의 동방신기'를 만들겠다고 한 그의 발상에는 대중문화를 즐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중음악의 천박성이나 상업성에 혐오감을 드러내는 이중적 허위의식을 비틀어보자는 취지가 숨어있다. 자신의 아이돌 스타 시절에 대해서도 그는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감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그 나이 또래에 맞는 음악를 즐기고 배워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캐릭터는 말 잘 통하는 동네형이지만 잔소리는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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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비판적인 가사의 노래를 하는 신해철씨나 싸이 등의 가수를 보면서 노래를 통해서만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내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네이션'을 듣는 청취자들은 그런 거부감이 없다. 내 캐릭터를 규정하자면 나는 당구장에서 껌 씹는 백수 형이다, 허름한 차림새에 애들한테 담배나 가르치고, 중학생이면 여자를 알 수 있는 나이라고, 괜찮다고 부추기는,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혀 차는 캐릭터다. 기성 세대 전체가 나를 봤을 때 어떤가? 공문서상으로 대학 중퇴이고, 전과이범으로 화려하지 않은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는 거기까지다. 내가 애들한테 말 잘 통하는 동네 형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애들한테 인사 잘 하고 다녀라는 둥 여러 가지 잔소리 할 처지는 아닌 것이다. 그런 것을 한 적도 없고. 내 라디오 프로그램 상담코너가 수요일인데, 그날은 60대까지도 듣는다. 아줌마들의 반응이 놀랍다. 내 프로에서는 욕도 하고 초등학생하고도 말 튼다. 나는 그 정도로 권위를 싫어한다.

"내가 갖는 권력은 오락반장의 권력일 뿐"
-권위를 싫어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팬들에게는 신해철이라는 이름 자체가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지 않는가?

나는 권위를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권위를 파괴해서 없애야 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존경받는 권위, 자연스러운 권위는 긍정적인 것이고 바람직한 것이다.

내 캐릭터가 누리는 권력은 오락반장의 권력이다. 수업 시간에 오락 시간 갖는데 오락반장이 '너 나와서 노래해' 그러면 그러려니 하지 '저 새끼가 왜 저래' 하면서 길길이 날뛰는 사람 없지 않나. 권위를 쫓는 것 자체가 문제이지 사실 정당한 권위는 좋은 것이다.

"선거운동 한 것 후회
스타의 책임감보다는 개인적 권리 찾기 위해 참여"
-세상과 당당히 소통하고 숨지 않는다는 면에서 또 다른 스타, 서태지와 대비되는 것 같기도 하다. 연예인과 정치의 관계를 어떻게 보나? 정치는 절대 안 하겠다고 했는데 사실 참여하는 것, 그리고 설득하는 것은 다 정치 아닌가? 학교체벌반대운동도 벌이고 있는데…

내가 체벌과 같은 사회 문제에 무관심해지고 맞았던 것 기억을 잊어버리면 이 체벌 문제는 영원히 인권 사각지대로 남을 것이다. 사실 스타로서의 의무감이라기보다는 나 개인이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거다. 나는 내가 모르는 것 그리고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주제 넘게 말한 적이 없다.

-대선 때 선거 운동을 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는데 이유가 있다면?

내가 손해를 많이 볼 테니까. 음악하는 데 매우 큰 손해를 봤다. 그래도 했던 것은 우리 세대가 직장에서 자리 잡고, 이제 막 애 낳은 사람도 있고 낳을 사람들도 있는데 욱 했던 것들을 마음 속에 숨기면서 살 거냐, 기회 닿으면 길거리에서 칼 들고 다시 뭉칠 거냐. 이런 게 궁금했던 거다.

-386세대가 갖고 있는 권력에 대한 상처가 있는데, 운동권 내의 조직 논리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은 없었나?

물론 그런 상처가 있어서 그때까지 투표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주사파니 , NL이니 할 게 없고 참여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들이었다.

-대선 이후 사회를 보는 시선이 바뀌었나?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다. 더 큰 절망도 봤고 내가 못 보던 용기를 보기도 했고… 결론은 플러스 마이너스 똑같은데 그 좌우의 폭이 더 커졌다.

-직접 참여하고 나서 정치권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뀌었나?

아니다. 더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창피한 얘기지만 예전에는 투표도 안 하고 정치적 이슈는 외면해왔다. 지금은 이런 수준의 놈들이 정치를 하고 있는데 내가 투표를 안하고 얘네들이 마음대로 날뛰게 내버려두면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더 부정적이 된 거다. 부정적일수록 위협감이 들수록 투표는 더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과 정당은 단지 도구일 뿐
민주노동당 지지, 언제든지 선택은 바뀔 수 있어"
-대선 후에는 파병반대 집회도 나가고, 현 정권을 공격하는 입장이 된 거 같은데?

노무현 대통령이나 정당은 한 개인,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도구일 뿐이다. 우리가 원하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때마다 최선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내가 마음속으로 장기간 지지할 정당은 따로 있었다. 다음 선거에서 예외가 아니다 싶으면 당연히 마음을 바꿀 거다. 내가 노무현 캠프에서 일할 때는 민주당이었지 열린우리당이라는 당은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원하는 것들이 잘 실현되고 있다고 보나?

잘 되긴… 개판이다. 실현된 게 뭐가 있느냐.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오르락 내리락 하지만 그래도 참 고마운 것은 멀리 떨어져서 보면 상향 곡선을 긋고 있는 것 같다.


-본인이 좌파라고 생각하나?

요즘 같은 시절에 내가 좌파라는 게 말이나 되겠나? 난 진보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내가 생각하는 원칙을 얘기하면 진보라고 하더라. 나는 사회 통합이나 균형을 매우 중시하는 사람이다.

-언변이 놀라울 정도다. 설득력이나 리더십도 있고. 정치가에 적합한 덕목 아닌가?

태어나길 사기꾼으로 태어나서.(웃음) 사실 대선 연설 원고도 다 내가 썼었고. 유세장에서 프롬프터로 원고를 올려주는데 나는 그냥 키워드만 올려달라고 해서 단어 하나 보고 한 단락 연설하고 그랬다.

내가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난다'고 한 것에는 많은 함축적인 의미가 있다. 나와 정치인은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다. 지난 대선 때 내가 했던 말이 통했던 것은 진실에 호소했기 때문이다. 연설문도 내가 느낀 것, 그냥 내가 아는 거에 바탕해서 하지, 주제넘게 거짓말하거나 남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항상 사회적인 발언을 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면 록스타의 은둔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사실 록스타의 은둔주의는 내가 원하던 것이다. 그냥 닥치고 음악만 하는 거. 그런 걸 하고 싶었다. 근데 주변에서 나를 가만히들 내버려두지 않는 것 같다. 무슨 일만 터지면 가수들, 인디, 메이저 할 것 없이 "네가 저번에 그 얘기 좀 했어야 하는데…'라고 말한다.

"현실의 교훈에서 결혼 결심
나는 계량형 마초, 남자들 기 살려줄 때도 필요하다"
- 서태지는 결혼을 왜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얘기 하기도 했는데… 신해철씨는 결혼을 한 걸 보면 관행이나 제도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타협을 했다. 성당에서 결혼식을 했다. 딱 하나 허용한 게 웨딩 드레스 입는 거였다.

-남들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허용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웨딩 드레스가 흰색인 게 신부의 순결을 상징하는 거다. 그런데 신랑은 흰색 안 입지 않나? 다이아몬드가 결혼 반지인 것도 이해가 안 간다. 우리는 은반지를 했다. 그게 알고 보니 드비어스 사의 공작에 의해서 일본에서 유행이 시작된 거라고 하더라. 우리 마누라도 여장부인줄 알았더니 면사포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 그것은 허락했다.

나도 결혼 제도에 대한 거부감은 많았지만 현실에서 배우는 게 있더라. 결혼 전에 애인이 아팠는데 약혼자가 간호하는 거 하고 남편이 병간호하는 것은 완전히 얘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제도가 싫어도 제도를 통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도감을 줄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한다. 내가 왜 거기서 잘난척하고 '록히어로'로서 폼을 잡고 있겠나. 폼은 무대에서만 잡으면 된다.

-넥스트 가사에는 패미니즘적인 요소가 많은데, 록이 마초적 장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언발란스하다. 마초 성향의 가수들이 페미니즘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 표리 부동하다는 지적도 많다. 이를테면 그들도 핑크(미국 록음악계의 배드 걸(bad girl))와 브리트니 스피어스 중 핑크를 더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웃음) 그런 면에서 난 내가 계량형 마초라고 생각한다. 물론 혼란스러운 면이 있지만 마초의 정체성에도 순기능이 있다. 영화 넘버 3를 보면 여성에게 너무도 순종적인 조폭이 나오는데, 진정한 마초일수록 여성에게 매너가 좋다. 그리고 마초성이 남자들 기를 살려주는 면도 있다. 우리 나라 남자들 욕할 때 하더라도 의기소침해 있으면 기 살려줘야 한다. (웃음)

한 시간 반의 인터뷰가 끝나고 그는 고스트네이션을 진행해야 한다며 바쁘게 자리를 떴다. 매일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14일로 예정된 콘서트 연습과 방송 스케줄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으로 바쁘단다.

자신의 캐릭터를 '불량한 백수'라고 규정한 신해철의 말은 겸손임에 분명했다.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음악과 행동으로 풀어내는 치열한 열정, 그리고 표현의 한계와 자신의 역할에 대해 선을 그을 줄 아는 지혜로움은 그를 단순히 저항과 일탈의 코드에 가둬두지 않는 듯 하다. 그는 수많은 록 팬들의 '믿음직한 형'이나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친구'에 가까워 보였다.

수 많은 젊은이들의 공감을 얻었던 넥스트의 명곡 '아버지와 나'의 가사처럼 그는 시대를 함께한 그의 친구들과 함께 아버지가 되어 갈 것이며, 그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세상을 알아가게 될 때까지 대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에야 이루어질까. 오늘 밤 나는 몇 년 만에 골목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할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넥스트 1집, '아버지와 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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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뛰어난 장점에 맞서는 방법은 오직 그것을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 (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