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보러 오라고 구걸하지 말고 재미있는 축구를 해라" "재미있으면 축구장 알아서 간다니까!"
월드컵이 끝날 때마다 반복되는 이야기가 있다. 'K리그를 살려야 한다.' 월드컵의 최대 수혜자라 할 수 있는 언론의 의무감이랄까... 월드컵이 끝나고 나면 적어도 1주일 이상 K리그에 관한 이야기가 매체에 등장한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K리그'라는 단어를 주제로 한 기사가 나오지 않는 매체를 찾기 힘들 정도니까. 재미있는 것은 그런 기사가 실리는 날조차 해당 매체에서는 같은 날 열린 K리그 경기 결과나 순위표를 보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어떤 스포츠뉴스에서는 'K리그'에 관중이 없다는 내용으로 중흥 모색의 의견을 제안하는 기사가 나간 바로 그날, 당일에 열린 경기에 관한 언급 없이 뉴스가 마감된 걸 본 적도 있다. 극한의 모순이랄까.
하지만 이 글은 언론의 표리부동이나 무관심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수용자들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이를테면, 글 서두에 따옴표 처리로 소개한, 그러니까 다소 '럭셔~리'하면서도 '게으른', 혹은 '오만한' 사람들에 관한 얘기가 될 것이다.
1) "K리그가 재미없다?" 편견을 깨자!
말인즉슨 이렇다. '자업자득'이란 주장. 그러니까, K리그가 재미없으니 인기 없는게 당연하다는 말. 내 주변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 치고 수요일이나 주말에 경기장 가서 제 돈 내고 (아니, 공짜로라도;) 경기 두 눈으로 직접 본 사람 한 명도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진 그렇다. 아니, 어떻게 제대로 한번 보지도 않고 '재미' 여부를 판단하시는건가. 수백명의 선수들이 수천,수만의 팬들과 어우러져 수백억의 돈을 써가며 만들어내는 이벤트인데, 어떻게 제대로 한번 관심기울여 보지 않고 '재미없다' 한마디로 무시할 수 있는건가. 참 '오만하고' '게으른' 대꾸 아닌가 말이다. 영화도 일단 한번 봐야 재미있는지 없는지 알지 않나.
게다가 이건 매우 '무책임한' 행위이기도 하다. 내 경험을 한번 예로 들면, 예전에 한 친구가 '범죄의 재구성'이란 영화가 재미없더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봐야지' 하던 마음이 싹 사라졌었는데 언젠가 우연히 DVD로 이 영화를 구해 보고선 심한 배신감을 느꼈더랬다. "아니,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였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 그 영화 보지도 않고선 주워들은 말로 "재미없대" 한마디 던진거란다. 하지만 그 한마디는 이 영화의 '잠재적 고객'이었던 나로 하여금 영화에 대한 관심을 뚝 끊어버리게 만들었다.
K리그에 대한 '무책임한' 평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K리그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다. 그 첫번째가 'K리그는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은 그 안에 갇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 채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그 선입견을 퍼뜨리고 다닌다. 경기장에 한번 가 본 적 없으면서 무심결에 (악의가 있지는 않겠지) "K리그 재미없잖아"라고 한마디 툭 던지면 역시 선입견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 말에 "맞어, 그러니까 인기가 없지"라는 식으로 받아친다. 경기장 한번 가 본 일 없는 두 분의 짧은 대화 속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K리그는 역시 재미없어. 가고 싶지 않아"라는 인식을 공유하게 된다.
그런 분들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그런 '엄청난' 말을 하실 정도로 K리그가 못마땅하다면 일단 한번만 가보시라고. 실제로 경기장 가서 보면, K리그 경기, 볼만하다. 국가대표팀 경기와 비교해도 더 많은 골과 더 화려한 개인기, 그리고 때론 더 많은 육탄전;까지도 볼 수 있다. (그래선지 지방에선 아직도 K2리그 경기 홍보물이 나붙으면 격투기 K1 선수들이 시합하러 오는 줄 안다고 한다. -_-)
K리그에 스타선수, 혹은 잘하는 선수들이 없다고 투덜대는 것도 난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대표팀 멤버 다수가 여전히 K리그에서 뛰고 있다. K리그의 그라운드 위에서는 이운재의 선방과 이천수의 질주, 정경호의 경례, 김상식의 미소를 매주 볼 수 있다. 대표팀 경기에서는 볼 수 없는 이운재와 김영광의 맞대결, 김남일과 이을용의 맞짱, 점퍼입은 차범근 감독, 그리고 (일반인들에게는) '숨겨진' 꽃미남인 이관우, 안영학, 박정석 등등이 튼실한 허벅지로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모습들을 맘껏 감상할 기회도 된다, (운이 좋다면, 이싸빅의 '유창한' 한국어 사투리를 듣는 재미도 있다.)
물론, 재미를 느끼는거야 매우 주관적인 기준에 따른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할 수 없는(?) K리그의 맹점 - 예를 들어, 텅빈 관중석으로 인해 의욕 잃은 선수들의 느슨한 플레이, 경기 진행이 자주 끊어지는 부분 등 - 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내 평가에 동의할 수 없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두 가지다. 첫째, 일단 가서 느껴보고 얘기해달라는 것, 둘째는 K리그의 수준이 당신들의 생각처럼 그리 악랄하진 않다는 것이다. 원색적으로 말하자면, 돈과 시간을 들여 객석에 앉아볼만한 가치는 한단 얘기다. 만일 "K리그가 재미없다"고 말하시려거든 적어도 이 두 가지 정도는 경험한 뒤에 해주시라. 아니면, 아예 언급도 말아줬으면 한다. 요즘 신인 연예인들은 '악플도 관심'이라며 무관심보다는 악플이 낫다고들 한다지만, 이 경우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무책임한 악담은 관심없는 사람들까지도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게 해 'K리그를 두번 죽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2) K리그, 공정하게 보자 - 6:25의 싸움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떨까. K리그에 대한 선입견. 수준 이하라는, 재미없다는, 엉망의 동네축구라는 편견들. K리그 시스템에 면죄부를 주잔 얘기는 아니지만, 나는 이러한 선입견들이 부당하다고 본다. 이를테면, K리그는 축구팬들로부터 '공정거래'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단 뜻이다. 산업을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다시 미디어, 그리고 당신들에 관한 것이다.
K리그가 재미없는 첫번째 이유, 혹은 사람들이 "K리그 봤는데도" 재미없더라,고 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TV 탓이다. 많은 사람들이 K리그를 접했을 것이다. KBS의 [비바 K리그]였을 수도 있고, 각 방송국의 스포츠뉴스일 수도 있을 것이며 때로는 케이블TV의 축구중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K리그는 재미없다"고 단언하는 당신, 모르긴해도 아마 2분 이상 보지 않고 채널을 돌렸을 것이다. 그 정도라면, '왕의남자'도 '야심만만'도, '주몽'도 그닥 재미있을 수 없다. 전체를 판단하기엔 너무 적은 시간을 투자한 셈이니까.
하지만 우연히 본 그 화면들이 재미없다는 걸 납득하기 어렵단 뜻은 아니다. 그리고 그 틈에서 '불공정'이 발생한다.
우리가 재미나게 본 축구경기들은 대개 월드컵, 챔피언스리그, 혹은 박지성이 출전하는 프리미어리그 경기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경기들은 대개 20대 이상의 카메라를 동원한다. 물론, 각각의 카메라맨들의 역량 역시 최고 수준이다. 그들은 오프사이드 깃발을 치켜드는 선심과 휘슬을 불지 않는 주심을 빠르게 번갈아 보여주는, 지단이 코너킥을 준비할 때 앙리가 문전으로 달겨드는 장면을 마치 '득점 예측'이라도 하듯 순서대로 보여줄 줄 안다(프랑스-브라질전).
반면, K리그의 경우 모 케이블 채널에서 경기장에 보내는 카메라의 수는 6대다.여,섯,대... 난감하다. 물론 10대 가량 쓰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에 K리그 중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케이블TV나 지역방송국에서는 대개 6대~10대의 카메라를 쓴다. (중계차 2대가 나갈 경우 16대까지 쓸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쉽게도.) 영상과 음향으로 승부하는 TV생중계에서 카메라 갯수 하나의 차이는 매우 크다. (7대의 카메라로라면, 지단이 마테라치를 머리로 들이받는 장면을 놓쳤을 가능성도 크다. 이를테면 말이다.) 당연히, 재미도 적다. 25대를 사용한 월드컵과 7대를 사용한 K리그 중계는 그 대회의 경기력 차 이상의 갭(gap)을 발생시켜 K리그를 상대적으로 더 초라하게 만든다. 물론, 그렇다고 K리그를 중계하지 말잔 얘긴 아니다; 저조한 시청률과 적은 광고수입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K리그를 방송하는 케이블/지역방송사들의 노력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역시나 당신들, 혹은 우리들에 관한 것이다.
'K리그가 재미없다'는 명제를 진실로 믿고 싶다면 이런 '불공정'한 차이들은 감안해주어야 한다. '킹콩'을 CGV아이맥스영화관에서 본 사람과 불법다운로드로 받은 동영상 화일을 12인치 노트북으로 본 사람이 같은 영화를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지의 제왕'을 VHS비디오로 본 사람이 '반지의 제왕, 볼 거리 없다'는 글을 남겼다면 이 영화를 극장 스크린에서 재미있게 본 사람 입장에선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축구도 마찬가지다. 같은 선수들이 출전해도 K리그와 국가대표팀 경기의 흥분도가 다른 데에는 역시 카메라가 큰 역할을 한다. 더군다나, K리그의 경우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는' 기회도 적다. 제한된 기회 속에 수많은 명장면들이 사라진다. 기억에서 잊혀진다. 스위스-우크라이나 전처럼 '드럽게' 재미없는 월드컵 경기는 수천만명의 지구인들이 시청하지만 포항과 성남의 재미난 경기는 1% 미만의 시청률을 기록할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K리그는 재미없어'서 이 모양이라고 재단할 수 있는가, 말이다.
이를테면 이런 사례도 있겠다. 어느새 '왕년'이 된 시절에 '최문식'이라는 테크니션이 있었다. K리그에서 수시로 '사포'라는 기술을 구사하던 선수다. (모르시면 엠파스 열린검색을 이용해주시기 바란다ㅋ) 월드컵구장이 오픈하기 전, 수원종합경기장에서 이 장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 실제로 저 기술을 보게 될 줄이야! 하지만 이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지단의 '마르세유 룰렛'(이것도 열린검색;)이야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보고 또 봤을테지만, K리그에서 최문식이 사포를 구사했던 사실 자체는 그리 널리 알려진 사실이 아니다. 그 차이가 결국 'K리그는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을 강화시키게 된다. 조금은 다른 예지만 이런 것도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대부분은 아마 '존 오셔'나 '주베르뷜러'라는 사람들의 직업을 알고 있을거다. 하지만 '김형범'은 어떨까. 한국내에서 그들이 갖는 인지도의 차이가 단순히 실력이나 화려함 때문이라고 믿는가. 우리는 우리가 가진 보석이나 진수를 체감할 기회를 빼앗긴 채 외부로 시선을 돌리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럽축구팬들의 수가 늘어나지만 일부 팬들의 지적대로 이들을 단순히 '유빠(유럽축구 빠돌이)' 내지는 '사대주의자'로 몰아세울 수 없는 것도 결국 '공정'하지 않은 매체 구조 탓이 크다. 25대의 카메라로 찍어 보내는 화려한 영상과 6대의 카메라로 전송되는 둔탁한 영상 사이에서 왜곡된, 편향적인, 편애하는 시각이 형성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3) 세상에 중심에서 'K리그 재미없다' 외치는 이들에게.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결코 매체에 대한 비평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것처럼, 오히려 수용자의 마음가짐을 향한 호소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혹은 당신들은 K리그와 월드컵, 혹은 프리미어리그를 단순비교했다. 그 불공정 경쟁 과정에서 K리그는 '재미없고 수준 떨어지는 동네축구'라는 오명을 썼다. (매체 비평의 글이라면 편향된 뉴스에 대한 지적도 있어야 겠으나 이 글에선 생략하겠다.) 그래서 이렇게 적고 있는 것이다. 그 '럭셔리한 시선'을 벗어던져달라고. 만일 탓을 하려거든 '저질 K리그'가 아니라 '게으른 몸뚱아리'를 탓하라고.
국가대표팀 경기와 K리그 경기 간에는 그리 커다란 경기력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대표팀에 해외파가 있다면 K리그 팀들에게는 외국인 선수들이 있다. 국가대표팀은 간간이 모여 발을 맞추지만 K리그 팀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한다. 국가대표와 성남 일화가 맞붙는다면 어떤 팀이 승리할 지, 어떤 팀이 더 재미난 경기를 펼칠 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대표팀 경기를 더 재미있다 느낀다. '애국심'에 더해진 20여대의 카메라가 전하는 붉은 전사들의 경기에 비하면 '애국심'이 사라진 6대의 카메라를 통해 비춰진 경기는 '당연히' 초라하다. 그런데 그 차이를 생략한 채 K리그에 몰매를 주는 것은 온당치 않다. 비겁하다.
그래서 다시 말한다. '재미없다'고 일갈하려거든 '게으른 몸'을 한번 움직여 경기장에 와주시라고. 경기장에 와서 비교해도 재미없다면야 누가 뭐라겠는가. 게다가 경기장에 오면 축구는 더욱 재미있다. 1,2천명의 관중으론 부족하겠지만, 탁 트인 곳에서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한 지점을 응시하며 감정을 공유하는 기분은 그 어떤 공연장에서도 느낄 수 없는 쾌감이다. 또한, 경기장에선 카메라는 오로지 하나(당신의 두 눈!)지만 당신 스스로 카메라맨이다. 공이 따라가지 않는 곳을 당신 마음대로 찍어볼 수 있다. 당신이 원하는 경기장 구역을 당신 마음껏 눈으로 흡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수가 2,3만 관중에 달하면 선수들의 경기력도 당연히 올라간다. 한발씩 더 뛰고, 한골씩 더 넣고, 한방울씩 더 땀과 눈물을 흘릴 것이다.
카메라의 예술이 우리를 지배하는 TV 앞에는 그 뒤에 가도 늦지 않다. '재미없다'는 비판도 그때 가서 하자. K리그가 바뀌길 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비판이라도해도 일단 와보고 난 뒤에여도 늦지 않다. '무책임하고' '럭셔리하며' '게으른' 시선을 거둔 뒤에라면 우린 어쩌면 매주 월드컵을 만나는 신묘한 경험을 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분위기라면, 패배로 흘리는 이천수의 눈물도, 오프사이드 하나에 목숨 걸고 항의하는 선수들의 핏발 선 눈매도, 4년마다가 아닌 매주마다 우리의 것이 된다. 그리하면, TV앞에서도 우린, 더 많은 카메라가 더 좋은 시간대에 전하는 K리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된다. 정말 소중하고 귀한 프로그램인 [비바 K리그]나 [사커플러스]가 구석진 시간대에 '하이라이트'만 모아서 보여주는 골방신세를 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의,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K리그를 보러 가자'는 이야기는 그래서 '구걸'이 아니다. '책임감'이나 '사명' 따위도 아니다. 단지 공정하고 온당하게 우리가 가진 재미를, 가치를 되찾자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건 생각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미천한 필력으로나마 기나긴 글을 적어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라면 금요일 저녁, 퇴근도 미룬 채 이렇게 끄적이고 있을 리 없지 않겠는가. 적어도 나는 그러하다. K리그 팀 성적 몇 줄 찾아보기 힘든 이 나라에 사는 나란 인간만큼은. (이러한 생각이 나만의 공상은 아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