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문제집만 풀 땐 전교 1등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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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의 책상] 서울 목동 한가람고 1학년 나우영군
질(質)보다 양(量)으로 승부하기. 공부할 마음은 있지만 방법을 잘 모르는 학생들이 자주 쓰는 학습법이다. 한국사 같은 암기과목은 내용이 담긴 쪽수까지 달달 외우고, 수학은 시중 교재를 전부 사서 다 푼다. 서울 목동 한가람고 1학년 전교 1등 나우영군도 중학교 때까지는 그랬다. 시험 한 달 전부터 준비해도 시간이 늘 부족했고,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는 과목도 있었다. 고등학교에 올라온 후 이런 공부법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에 자신만의 공부 전략을 짰다. 중학교 졸업 때만 해도 상위 7.5%던 성적이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으로 껑충 뛰어오른 이유가 여기 있다. 성적 향상의 비결을 그의 책상에서 찾아봤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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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이 공부법의 핵심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구분하기다. 무작정 계속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틈틈이 확실히 이해한 내용과 부족한 부분을 확인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빈 연습장에 대단원·소단원 명을 적고 그와 관련한 키워드를 적어보는 거다. 예컨대 생명과학의 신경계 단원을 공부하면 신경계 하위 개념인 ‘중추신경계·말초신경계·자율신경계’를 적고 ‘중추신경계는 뇌와 척수로 구성돼 있고, 뇌는 크게 대뇌·소뇌·간뇌·중뇌·연수로 구분한다’는 식으로 개념을 확장해 나간다. 때로는 그림까지 그려가며 입체적으로 한다. 그는 “이런 식으로 공부하면 내가 부족한 개념이 뭔지 단박에 안다”며 “시험이 임박하면 부족한 부분만 확실히 다시 보고 넘어가면 되기 때문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우영이도 이런 방법으로 공부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중학교 때까지는 오히려 무식하게 공부하는 축에 속했다. 열심히는 했지만 노력에 비해 성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얘기다. 전교 10등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우연한 계기로 새 공부법을 찾았다. 교과서를 읽으며 암기하던 우영이는 무심코 머릿속에 남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고 느꼈다. 바로 책을 덮고 연습장에 머릿속에 든 내용을 손으로 써 내려갔다. 방금 전까지 공부한 내용이었지만 연습장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때 깨달았어요. 지금까지 ‘외웠다’고 생각했던 게 실은 하나도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는 걸 말이죠. 눈이 순간적으로 기억한 걸 암기했다고 착각한 겁니다.” 또 교과서만 무조건 달달 외우는 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시험만 끝나면 다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기말고사 등 단기 집중력 싸움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수능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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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이는 이때부터 다른 많은 전교 1등이 하는 것처럼 모든 과목을 책 한 권으로 만드는 단권화 작업을 했다. 교과서·교재·유인물 등에 나온 모든 내용을 노트 한 권에 정리해 나만의 교재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대부분 모범생이 많이 쓰는 방법이지만 우영이는 좀더 철저하게 정리했다. 개념과 오답은 물론 문제 풀 때 주의할 점, 쉽게 빠지는 함정까지 정리했다. 그는 “시험 전 이 노트만 보면 기본 개념은 물론 자주 틀리는 문제 유형과 시험에서 자주하는 실수까지 확인할 수 있다”며 “대부분 문제 풀고 채점하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맞은 문제도 다시 살펴봐야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성적 상승 비결은 또 있다. 교과서의 기초부터 튼튼히 하는 거다. 그는 중학교 때까지 쉬운 내용은 건너뛰고 어려운 내용 위주로 공부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수학은 일품·블랙라벨, 생명과학은 EBS수능특강·자이스토리처럼 고난도 교재만 골라 풀었다. 모의고사도 쉬운 문제는 제쳐두고 고난도 3점짜리 문제를 집중 공략했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면 쉬운 문제는 저절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본 후부터 생각을 고쳐먹었다. 시험에는 교과서 기초 개념을 묻는 문제가 많이 출제됐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다고 쉬운 문제를 풀 수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교과서만 제대로 보면 맞출 수 있는 걸 틀리니 ‘멘붕’이 왔다”며 “이후 기본 개념부터 확실히 익혀 나갔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최상위권 학생처럼 우영이도 복습을 철저히 한다. 수업 후 1~2분은 반드시 직전 수업 내용을 떠올리며 흐름을 파악한다. 이후 자율학습 시간에 단권화 작업을 통해 교과서 개념을 파악하고 정리한다. 그는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제대로 복습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바라는 건, 로또 당첨을 바라는 것처럼 무모하다”고 말했다. 수업 내용 복습이 꼭 필요한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얘기다. 교과서로 기본 개념 쌓고, 복습하고, 단권화 하고, 스스로 모르는 걸 파악해가며 공부한 결과는 전교 1등으로 이어졌다.
교육열 높은 목동에 살다보니 사교육 도움을 많이 받았을 거라는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현재 수학 학원 딱 한 곳만 다니고 있다. 초등학교 때 영어·수학 학원을 꾸준히 다녔지만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수학 학원만 다니고 있다. 영어는 혼자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다. 사실 학원을 놓고 엄마 박향진(44·서울 목동)씨와 갈등도 많았다. 워킹맘인 엄마는 못내 불안해 중학교 졸업 때까지만이라도 영어학원을 다니라고 했지만 우영이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박씨가 아이 뜻을 따랐다.
이를 계기로 우영이는 누가 시켜서 공부하는 타입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 이후 엄마는 학원을 강요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우영이가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늦게까지 놀아도 심하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평소 교육철학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부 잘해 좋은 대학 가는 것만큼 즐거운 학창 시절도 의미있다고 생각해서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가 PC방에 출입하면 게임중독을 우려하는데 박씨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단다. 아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밑바탕에 있기에 다 가능한 일이다. 박씨는 “부모가 아이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한 아이는 절대 엇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씨는 우영이가 어렸을 때부터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게 많다고 가르쳤다. 어른 공경하기, 친구와 사이 좋게 지내기, 정리정돈 잘하기 등이다. 말로만 강요한 게 아니라 먼저 모범을 보였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하는 걸 비롯해 주변 사람과 잘 지냈고, 워킹맘으로 생활하면서도 집안에 먼지 쌓이지 않게 유지했다.
이런 가정교육 덕분에 우영이는 학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학교 좋아하고, 정리정돈 잘 하고, 노트필기 꼼꼼히 하는 학생으로 자랐다. 이중 책상 정리는 높은 집중력을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다. 집은 물론 학교나 학원 등 어디에서나 공부를 할 때면 항상 책상 위를 먼저 깨끗이 치워 놓는다. 우영이는 “불필요한 노트·필기도구·교재 등은 모두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라며 “집중력이 안 좋은 사람은 책상부터 깨끗이 하는 습관을 기르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joongang.co.k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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