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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살, 내가 프로그래머로 사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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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ACOM 230-15 
    1970년대초 처음 내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광운전자계산소 부설학원에서 배울 때 구경하면서 배운 컴퓨터이다. 당시 광운대학교 전산실에 설치된 이 컴퓨터는 우리네 학원 수강생에게는 구경만 하는 존재였다. 
    메인 메모리가 16K 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리는 CODEING SHEET에 프로그램을 써주기만 하면 키펀쳐가 80컬럼 카드페이퍼에 천공을 해서 카드리더기로 읽힌다. 
  실행결과는 LINE 플린터로 나오는데 프로그램 오자라도 나오면 ERROR LIST만 한보따리 받고 한주일을 기다려 다시 실행을 할 수가 있었다. 
  키보드도 못만져보고 프린터, 모니터는 구경만 했다. 메모리는 CORE MATRICS방식이어서 커다란 석쇠 같은 망에 쪼그맣게 끼워진CORE(자석 링)를 볼 수 있었다. 그래도 한국땅에는 컴퓨터란게 10여대밖에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구경한번 해본 것으로도 자랑거리삼아 떠들고 다녔으니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만 하다. 
    아마 지금쯤 광운대학교 창고에 이 고철이 있을지 모른다. 1985년경 세미나로 학교를 방문했을 때 만해도 전산과 교수의 말이 창고에 먼지를 쓰고 있을 거라고 했는데... 

2. 내가 프로그래머가 된 동기 
    가난을 핑계로 대학을 포기한 내게 하는 일이라고 교회 일밖에 없어 교회 청년부와 청년연합회일을 열심히했고 한편 대한결핵협회의 씰크럽일을 하느라고 어지간히 분주했는데 군필만 받아주는 세상이어서 취직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한 목사님의 주선과 한 선배님의 배려로 컴퓨터 공부를 하도록 돈을 마련할 수가 있어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전산인으로 사는 게 된 것이다. 
    컴퓨터학원을 다니던중 1년간 군복무를 해야 했고 1975년 전산직 취직을 하려했지만 워낙 자리가 적고 특수직종이다 보니 우리처럼 공부한사람이 프로그램머가 된다는 것은 쉽지가 않음을 깨닫고 나중 언젠가는 반드시 써먹을 기술이라 여겨 대기업 생산직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10년 만에 기어이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3. SHARP 프로그래머블 계산기  
    1983년 회사의 품질관리업무 담당 시절에 매일 통계계산하고 그래프그리는 일이 다일 때 나는 컴퓨터를 생각했다. 
    그래서 구입한게 당시에 약 70만원짜리 일제 SHARP 계산기 인데 작기는 지금 노트북 만한 것이 키보트 다있고 컬러 펜사용하는 플로터 프린터에 카세트테이프 리더까지 있어서 BASIC프로그램만 익히면 못할 것이 없는 기가 막힌 기계였다. 
    나는 BASIC이란 언어를 처음 배우면서 이렇게 쉬운 프로그램도 있구나 하면서 밤을 풀풀 새웠다. 
    서비스로 제공된 프로그램 SOURCE를 분석하면서 회사 QC ROOM에서 사용할 모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출근해서 하루 종일 프로그램하다가 사무실이 조용해지면 깨달으면 모든 직원들이 퇴근한 것이었고 배가 고프고 추워지면 밤을 새웠고 동이 트는 것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누가 감시하지도 않고 누가 성과를 따지지도 않는데 나는 70만원짜리 컴퓨터를 구입해준 회사가 고맙고 프로그램하는 게 즐거웠다.
  근 1년을 씨름하고 나니까 품질관리업무는 웬만큼 전산화가 이루어 져서 일부 시험기계는 컴퓨터와 인터페이스하는 정도까지 되었다. 
  회사는 이 모든성과에 보답해서 Z-80 8BIT 프로세서의 마이크로 컴퓨터를 사주었고 나는 내친김에 급여관리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 
  4. Z-80  8 BIT 컴퓨터 
      Z-80 8BIT 이 컴퓨터는 미국서 부품을 수입해서 한글만 PORTING한 제품으로 M.MEMORY가 64KB 이고 128KB 5.25"플로피 디스크드라이브에 40MB 하드 디스크까지 있어서 당시로서는 고가품이었다. 
    이 기계는 브레인컴퓨터라는 회사에서 구입했고 그 회사의 교육을 통해 본격적인 DATA BASE의 기술을 익히게 되었다. 
    지금생각하면 속도가 얼마나 느렸든지 1,800여명 직원 급여를 계산하려면 프로세스만 20분정도 걸렸고 프린트를 하려면 도트프린터(당시 고려시스템제품으로 80CPS정도)로 급여 명세서만 약 80분에 봉투를 찍으려면 90분정도 걸렸다. 
    그런데다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만들지 못해서 급여 명세서 까지 인쇄해서 하나하나 따져봐야 ERROR를 찾을 수가 있는데 명세서 인쇄하다 틀린 것이 나오면 자료 수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번은 낮동안 입력하는 직원들시켜서 하루종일 급여 자료를 입력하게 하고 다들 퇴근한 밤시간에 계산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명세서를 인쇄하는 중이었다.  이날도 급여계산은 한번에 되질않고 몇 번을 수정 재작업하는 바람에 시간은 새벽이 다되었고 아침이 되면 퇴근을 하는 밤근무자들부터 월급을 주어야 했었다. 나는 회사에서 특별히 제작해준 커다란 테이블위에 컴퓨터 본체, 모니터, 키보드, 프린터를 나란히 놓고 쓰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리는 프린팅에서 종이라도 걸릴까봐 지켜보고 있으려니 프린터의 박박거리는 소리에 슬글슬금 졸음이 왔다. 나는 엎어져서 눈을 붙여보다가 결국 테이블 위로 올라가서 벌러덩 누워잠이 들었는데.... 
    한순간 나는 잠이 깨었다. 그건 박박거리면 급여명세서를 인쇄하던 프린터가 갑자기 조용해진 때문이었다. 
    아차!  잠든 내 팔꿈치가 컴퓨터의 RESET스위치를 눌러 버린 것이었다. 
    급여프로그램이 얼마나 멍청한 것인지 인쇄하다 중단하면 처음부터 다시인쇄해야 소계 합계 총계가 맞도록 인쇄되는 것이어서 할 수 없이 다시 작업을 하느라고 고생을 했다. 
    그시절 함께고생하던 직원 안덕민씨가 그립다. 
 5. HP/3000 S42와 전산실 
    회사는 1985년 HP/3000 미니컴퓨터를 들여놓고 전산실을 꾸미면서 전사적인 전산화를 추진하게 되었고 나는 1987년 본사 전산실에 합류하여 전산이 전업이 되었다. 
    인사.급여,회계.영업.수출.재고등 3개 지역의 공장과 본사의 온라인 시스템을 운영하는 방대한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나는 COBOL-II를 사용하였고 정작 MIS의 경험을 올바로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전산실 책임자가 되었지만 전산실 7,8명의 5년여 각고로 상당부분 전산화의 실적을 거둔데 비해 회사의 지속적인 투자부족이 더 나은 시스템을 발전시키지 못하고서 나는 중소기업으로 이직을 하고 말았다. 

 6. CLIPPER 
    (주)전방에서 HP/3000의 LOAD가 심해 지면서 나는 PC에 의한 분산처리 방편으로 PC LAN을 구축하고 단말프로그램으로 RM-COBOL과 CLIPPER를  사용하여서 좋은 성과을 얻었고 계기로 PC에 의한 인사.급여.회계.교회행정등 많은 시스템을 개발하게 되었다. 특히 판매재고관리 펙키지판매업체에서 1년동안 CLIPPER개발일을 했던 경험은 프로그램의 배포와 보안에 대한 좋은 경험이 되었고 중소기업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해하는 귀중한 경험으로 남았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CLIPPER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으며 개발도 그래픽 라이브러리를 사용하여 하고 있다.(참고:-아직도 DOS프로그램은 볼륨의 효율성과 실행 속도 면에서 윈도우와는 상대적인 잇점이 남아있다.) 


 7. Windows 
    그래도 이젠 윈도우다. 그리고 닷넷이다. 
    작년(2001년)부터 비쥬얼베이직으로 시작한 윈도우 도전은 아예 MS의 닷넷으로 빠지게 하였다. 이젠 회사의 어플이케이션 프로그램을 웹사이트와 연동하게 ASP.NET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현재 홈페이지는 ASP.NET으로 전환하였고 회계프로그램과 무역관련업무프로그램을 웹환경으로 C#을 사용하여 다시 개발하고 있고, 패션 브랜드 사이트개발을 수주하여 현재 개발중이다.  배운대로 잘 되지는 않았지만 책과 씨름하고 닷넷싸이트를 뒤지면서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는 재미에 날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간다. 

http://www.yongsun.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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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proverb
일하는 것, 이것만이 살고 있다 는 증거다. (파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