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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포위된’ 남학생들… “우리는 느리고 답답하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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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면에서 앞서가는 ‘알파걸’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에 못 미치는 ‘베타보이’가 있게 마련이다. 10대에 접어든 베타보이들은 알파걸들에 비해 학교생활을 특히 힘들어했다. 교사들은 “대체 남자애들은 왜 가만히 있질 못하고 그러느냐”고 야단치고, 또래 여학생들은 “(인간보다 덜 떨어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남학생들을 무시한다. 엄마들도 “딸들은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데 아들은 매사에 느려 답답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여학생들에게 유리한 한국의 학교 시스템과 학부모들의 조바심이 우수한 알파걸과 모자라는 베타보이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위기의 소년들(The Boy Crisis)’이라는 특집 기사를 냈다. 학습부진아 가운데 남학생이 훨씬 많고, 중고교에서 남학생들의 중도탈락 비율이 높으며, 대학생 수도 여학생이 남학생을 앞질렀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한국의 학교 현장이 꼭 이렇다. 예전엔 남녀공학에서 반장은 남자, 부반장은 여자 몫이었다. 요즘은 반장은 물론이고 전교회장 선거도 여학생들이 휩쓴다. 대학 진학률은 2009년 여학생이 남학생을 추월한 이후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댄 킨들런 교수(아동심리학)는 모든 면에서 으뜸이 된 여학생들을 그리스어의 첫 번째 철자인 알파(α)를 따 ‘알파걸’로 지칭했다. 알파걸의 선전에 상대적으로 위축된 남학생들은 ‘베타(β)보이’로 불린다. 이는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 학교가 힘든 베타보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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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행복원정대 취재팀이 서울의 초등학교 4∼6학년 64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에서도 남학생들이 학교생활에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학교생활을 좋아한다’는 문항에 남학생들은 평균 4.03점을 주어 여학생들(4.47점)보다 만족도가 떨어졌다. 

남학생들은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좋은 자녀다’ ‘나는 좋은 친구다’라는 항목에서는 여학생들보다 스스로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항목에는 4.00점을 주어 여학생들(4.13점)보다 낮았다. 

초등학교 5, 6학년 담임을 7년째 맡고 있는 이지은 교사는 이 결과에 대해 “남자아이들이 집 밖에서, 특히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는 뜻인 것 같다”며 “현재 초등학교 교실을 들여다보면 남학생들이 훨씬 많이 지적을 받고, 제지를 당하고, 열등감을 느낀다”라고 전했다. “수업을 시작한 지 20분 정도 지나면 남자아이들이 유독 두리번거리고, 물건을 떨어뜨리고, 몸을 배배 꼽니다. 자연히 교사들은 ‘도대체 남자애들은 왜 그러니’ ‘남자애들, 가만히 있어’라는 말을 수시로 하게 되지요.”  

현재 학교 시스템은 10대 남자 초등학생들에게 맞지 않는다. 뇌에서 듣기와 말하기, 기억력 등을 주관하는 측두엽의 신경세포는 여성이 남성보다 10% 정도 많다. 대개 남자는 시각이, 여자는 청각이 뛰어나다. 특히 여자는 신생아 단계부터 남자에 비해 청각이 훨씬 예민하게 발달한다. 지금처럼 교사 한 명이 정적으로 교단에 서서 여러 아이를 대상으로 지시를 내리는 방식은 청각 자극에 둔감한 남학생들에게 불리하다.

뇌 구조와 호르몬의 차이도 초등학교 고학년 남학생들을 부진아처럼 보이게 만든다. 10세 전후의 남자아이들은 직접 탐색하고 모험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반면에 여자아이들은 묻고 답하고 쓰는 데 뛰어나다. 신체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는 남아들의 특성을 고려해 선진국의 초등학교는 쉬는 시간마다 의무적으로 교실 밖으로 나가 뛰어놀게 한다. 그러나 한국의 초등학교는 쉬는 시간에도 “교실에서 뛰지 마라” “복도에서 장난치지 마라” “건물 밖으로 나가지 마라”는 훈계가 이어진다.  

김충권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남자아이들은 불안감을 처리하는 편도체가 여아보다 늦게 발달하고, 과격하게 몸을 쓰면서 감정적인 불편함을 해소한다”면서 “지금처럼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교육 방식은 남자아이들의 집중력과 학습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여자들’에 포위된 남자아이들 

10대 초등학생 남자아이들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 그리고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여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집에서는 아빠보다 엄마와 지내는 시간이 더 길다. 학교에 가도 대부분 여교사들이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 초등학교 교사 중 여성 비율은 1990년 50.1%로 절반을 넘었고, 2010년 이후로는 약 8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상당수가 6년 내내 여자 담임교사의 지도를 받는다. 남자 교사가 한 명도 없는 학교도 있다.

수도권의 한 초등학교 여자 교장은 “아들이 없거나 미혼인 여교사들은 남자아이들의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이론적으로는 이해하면서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여교사들은 남학생들의 행동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부지불식간에 남학생을 한심하게 여기는 언행을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초등학교 5학년 A 군은 심층 인터뷰에서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남자애들에게 ‘너희는 인간도 아니야’ ‘이렇게 말을 안 들을 거면 동물원에 가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래서 여자애들이 우리를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놀렸다”고 털어놓았다. 

상대적으로 조숙한 여자 또래들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요즘은 사춘기가 빨라지면서 ‘중2병’이 ‘초5병’으로 앞당겨졌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대부분 여학생들에게 해당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강병훈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는 “요즘 아이들이 성숙하다고들 하지만 이는 여자아이들에게 두드러진 현상이다. ‘초등학교 5, 6학년 남자’라는 존재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리고 미숙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요새 초등학교 고학년 여자 아이들은 언론을 통해 취업난이나 경제난을 접하면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거나 매사에 진지하게 임한다”면서 “남자아이들은 같은 공간에 있는 여자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위축된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사춘기 이전까지는 부모나 교사들이 남자아이를 여자아이와 같은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김충권 전문의는 “남자아이들도 사춘기가 되면 여자아이들과의 인지 발달 격차가 좁혀지고 즉흥성도 서서히 줄어든다”면서 “이런 골든타임이 오기 전에 남자아이들이 자주 꾸중을 듣고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 자존감이 떨어지므로 인내하고 계속 격려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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